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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Nov 12. 2024

과거를 잃은 느낌

편히 쉬셔요

검정 코트를 새로 장만했다. 장만하자마자 검정 코트 입을 일이 생겼다.


-어쩌다가 이렇게 갑자기... 초여름 때만 해도 아무 일 없으셨지 않아..?


대학교 때 친구들과 아주 오랜만에 학교 탐방을 나섰던 게 지난 6월. 반년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갑자기 그중 한 친구로부터 비보가 들려왔다.


-그동안 좀 아프셔서 검진을 했는데, 그땐 음성이라고 했거든. 큰 병원에서도 음성이라 했는데 계속 아프다고 하시니까 정밀 검사를 해 봤지.


차분한 어조로 이별의 서사를 읊는 친구. 어쩐지 마지막 그 순간이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단다.


-그때 어땠어? 이렇게 과거를 물어볼 사람이 이젠 없으니까... 좀... 춥더라?


부모님의 완전한 부재가 공식화되던 날, 이젠 고아구나, 라는 생각에 문득 추워져서 급히 겨울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고. 헤어짐도 물론 아프지만 이젠 자신의 과거를 잃는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이상했다고.


장례식장에 동행한 다른 친구도 한마디를 덧보탠다.


-나도 아버지 돌아가시고 내 과거가 뭔가 몽땅 사라진 기분이 들었어.

-그렇지... 그리고 너나 나나 외동이잖아. 같이 견뎌 줄 형제나 자매가 없는 것도 힘들더라. 형제가 떠나갈 땐 부모님이 계셨고 한쪽 부모님이 돌아가실 땐 다른 한쪽 부모님이 계셨고.. 그런데 마저 떠나가시니... 좀 힘들더라..?


검은 상복을 입은 친구가 너무 낯설다. 나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친구들의 낯선 아픔을 듣는다. 그들로 인해 자식의 과거 자체가 부모님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내 과거를 기억해 줄 이들이 하나둘씩 떠나면

그제야 아, 우리가 어른이 되었구나, 우리도 나이를 먹었구나,

이렇게 뒤늦게 철이 드는 것일까?



끝까지 있어 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인사를 나누며 발길을 돌리는데, 문득 고아가 된 것 같다는 그 친구가 돌연 약속을 잡는다.


-우리 다음에 어디 가기로 했더라? 맞다. 다음에 만날 때 떡볶이 먹기로 했네. 그때 우리 '시장 떡볶이' 먹자.

-그래, 그래. 떡볶이 꼭 먹자.



한쪽 과거를 잃었거나 양쪽 과거를 모두 잃어 봤 모든 분의 텅 빈 과거가 지금부터는 다시 단단해지기를, 그 자리에 새로운 행복이 들어차기를...


 

(추신: 이 글을 쓰고 있는데 모 연예인의 안타까운 소식이 들린다. 우리는... 분명 과거를 계속해서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지금 너무 추워서 앞이 깜깜하더라도 분명 우리는 지금도 꽤 괜찮은 과거를 만들고 있는 중일 거다. 모두, 아프지 마시길... 나쁜 마음은 절대 먹지 마시길...)

  



(사진: Eli Solitas@unspal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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