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생일이 지났으니까 이제야 하는 말인데, 혀니(내 조카)가 와서 이모한테 말하지 말라고 그러더라고. 내가 몇 번 실수를 할 뻔했어 하하하"
아부지 저도 이제 와서 하는 말인데요....
저 이미 알았어요.
나는 내가 내 생일에 조카들이 처음으로 끓여 준 미역국을 먹는다는 사실을 눈치채 버렸다. 아부지의 실수는 내 레이더망을 빠져나가지 못했다. 끝까지 비밀을 지켰다고 자부하는 할아버지와 연기를 하느라 애쓴 나에게도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그래도 더할 나위 없이 맛있고 행복한 선물이었다.쌍둥이네 식구들이 무슨 커다란 솥을 냄비째 들고 우리 집으로 들어오는데 자세히 보니 거기엔 하나 가득 미역국이 담겨 있었다. 생일마다 미역국을 먹긴 했지만 선물 자체로 미역국을 받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 국물에는 조카들의 정성과 나의 '미래 건강'이 살뜰히 녹아 있다.
조카들 덕분에 더없이 완벽한 생일, 아니 '생월'의 마무리였다.
한 달 내내 '매일매일이 내 생일'이라도 주창(?)하고 다녔고, 내 방에도 버젓이 액자까지 전시해 놓았던 터라 우리 집안 식구들은 내 생일을 모르려야 모를 수 없었다. 심지어 우리 엄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시어머니였으면, '아니 무슨 생일을 한 달 내내 한다고 해?'라고 며느리가 엄청 불만을 가졌을걸?"
자기애 넘치는 시어머니의 생일을 보필하려면 그 집 며느리, 참 힘들었을 텐데 다행인지 어쩐지 나는 시어머니도 되지 않았고 며느리도 해 보지 않았다. 그렇게 나의 장대한 '매일매일이 내 생일' 프로젝트는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지난 11월을 하루하루 돌아보니 정말 충만했다. 어떤 날은 '단풍'만을 위해 동네 공원을 산책하였고 어떤 날은 고라니, 장끼 등의 동물을 원 없이 만나기도 하였고, 또 다른 어떤 날은 나를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어준 친구들이 있어 정다운 시간을 나누어 가질 수도 있었다. 삼겹살을 배 터지게 먹고 세상 부러울 것이 없던 날도 있었고, 고장 난 드라이어를 새로 장만하여 따뜻한 겨울을 준비할 수 있었던 날도 있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거나 아무것이라도 하려고 바둥거리며 하루를 빽빽이 채우던 날도 있었다.그 모든 날이 나에겐 아름다운 생일이었다.
한 달간 내 매일매일(생일)의 '쓸데없는 TMI(too much info)'를 들어 주고 읽어 준 사람들이 있어서, 그리고 강제로 내 생일을 축하할 수밖에 없었던 분들이 계셔서 더욱 풍성했고 더욱 감사했던 한 달이었다.
누군가에게 시간을 들인다는 것, 누군가를 위해 펜을 잡고 마음을 꾹꾹 눌러쓴다는 것, 그리고 우리 조카들처럼 1년 내내 모은 은총표 250개 가운데 90개를 한꺼번에 누군가를 위해 내어놓으며 선물을 준비한다는 것.그 모든 것을 받은 사람이 나라는 사실이 놀랍다. 그리고 감사하다.
조카 녀석들의 두 번째 선물과 손 편지
비록 권세를 떨치거나 유명 인플루언서, 혹은 가진 것이 넘치는 대단한 사람은 아닐지라도, 11월 한 달, 그 30일의 생일 동안 정말 행복했다.
자, 그런데 11월... 잔치는 끝났다.
12월엔 어떤 행복으로 나를 채워야 할까?
12월에는 나 자신에게 <1일 1기쁨>을 보급하며 살아 봐야겠다. 모두의 12월에도 기쁨이 보급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