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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Sep 29. 2024

유언비어 제조기 담당

-전철역 근처 그 건물 있잖아, 왜. 거기에 웨딩홀이 생긴다고 쓰여 있더라?

-어머 진짜요? 우리 동네에 웨딩홀이 생길 데가 있나?

-1층에 현수막 붙어 있더라.

-엥? 1층에 웨딩 업체가?

-거기 엘지 전자인가 있던 곳에.

-응? 거기 규모가 별로 안 큰데?


여든 오빠의 말을 단번에 믿어 본 적이 언제던가. 우리 모녀는 증거를 잡으러(?) 떠났다, 는 아니지만 장을 보러 가는 길에 그 길을 지나치기로 했다.

'흠.. 역시... 여든 오빠다우시구먼...'

요리 언니와 늙은 아이는 여든 오빠가 언급한 동네 소식을 머릿속에서 과감히 삭제한다. 그곳에는 이런 문구가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웨딩 및 이사를 하는 사람들에게 가전을 더 잘 팔아 보겠다는 현수막이었다.



유언비어 유포죄로, 아니 허위사실 유포죄로 당신을 체포... 라고 채 말하기도 전에 또 다른 유언비어가 퍼지기 시작한다.


-선생님, 제가 통풍 때문인지 발이 붓고 혈압도 좀 오른 것 같고 그렇더라고요?

-네? 통풍 진단을 받으신 적이 있어요?

-아니요. 제가 보기에 통풍인 것 같은데.

-어이코, 아버님 그렇게 혼자 진단 내리시면 안 돼요.


무릎이 시큰하셨는지 스스로 진단을 내리시고 의사 선생님을 만나는 여든 오빠. 우리의 여든 오빠는 스스로 '통풍' 유언비어를 제조한다.


-그렇게 혼자 막 진단 내리고 그러시면 안 돼요.

교수님께 당부 섞인 따끔한 조언을 듣고서야 유언비어를 물리는 여든 오빠다. 어디 이뿐이던가.



-혈압약 드시나요?

-네.

-혹시 혈전제도 복용하시나요?


백내장 수술을 앞두고 상담이 이어지던 시간.

-네. 한 알 먹고 있어요.


응? 우리 아부지가 혈전제를? 이건 무슨 소리지? 의문이 드는 늙은 아이.


-아, 그러셔요? 그럼 수술 당일만 혈전제를 안 먹어도 되는지 담당 의사 선생님께 문의를 좀 미리 해 주셔야 할 것 같아요.

-아, 그럼 그쪽 상담을 받고 와서 수술 날짜를 정해야겠네요.

-네, 그러셔야 할 것 같아요.



안과 상담을 마치고 나와서 딸내미인 늙은 아이가 여든 오빠에게 넌지시 묻는다.

-아부지가 혈전제를 먹는다고요? 언제부터? 안 먹고 있지 않아요?

-먹어, 지금.

엥? 아닌 것 같은데? 대학병원 검진을 꼬박꼬박 같이 다니는 이 보호자가 모르는 처방이 대체 있단 말인가?


집에 와서 확인해 보니 콜레스테롤 관련 약이었다.

'아이코야, 우리 아부지.'

늙은 아이는 여든 오빠의 유언비어 탓에 백내장 수술차질이 생길까 염려한다. 여든 오빠 머릿속에서는 "나쁜 콜레스테롤을 물리치는 =혈전제"이라는 공식이 있었던 듯하다.


수술이 다 끝나고 혈전제 복용 여부를 다시 묻는 의사 선생님.

-그 약 안 드세요, 아부지.

내가 대신 냅다 고백을 해 버린다.

-아, 그래요? 그럼 앞으로도 상관없겠네요.





물론 우리 여든 오빠만 유언비어 제조기는 아니다. 나 역시 잘 알지도 못하는 사건을 과대 포장하거나 확대 해석해 전하기도 한다. 혹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기 다. 그러나 그건 다... 여든 오빠를 닮아서다(라고 우겨 본다.)



그렇게 '유언비어 제조 DNA'는 유전이 되었다.

그래도 여든 오빠, 요리 언니!

유언비어를 농담 삼아, 우리 그렇게 늙어가요, 함께.


유언비어를 유포하든 유포하지 않든

"우리는 모두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 거예요."


이건 결코 유언비어가 아닐 겁니다.



*등장인물 간략 소개
1) 여든 오빠: 여든 고개를 넘어온 아버지. 초등학생 대하듯 하나씩 알려 주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
2) 요리 언니: 초등학생 대하듯 가르쳐 주는 것을 가장 잘하는 편이다. 여든 오빠의 아내.
3) 늙은 아이: 1번과 2번의 반려견, 아니 반려딸.




(사진: bardia Hashemirad@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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