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쿠, 저 때까지 살면 안 되지.
TV를 보면서 감정이 이입된 '요리 언니'의 말씀이다. 허리가 꼬부라질 때까지 일을 하다가 허리와 다리가 상하는 줄도 모르고 살아온 어느 아낙의 모습. 이름과 나이가 소개되고 살아온 세월에 매기는 숫자가 100에 가까운 숫자라는 것을 눈치채자마자 요리 언니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신다. 저럴 때까지 사는 건 ○○이야..!
주름이 자글자글, 세월도 그 속에 녹아 자글자글. 끓고 삶고 찌고 지지고 볶은 세월이 주름 사이사이로 굵게 굵게 그 흔적을 남긴다. 모습도 변하고 세상도 변하고 눈이 어두워지고 귀가 어두워질 때까지 살아서는 안 된다는 지론을 펼치는, 일흔 넘은 우리의 요리 언니.
요리 언니뿐 아니라 여든 오빠도 마찬가지.
-뭐 아흔까지는 안 살아야 할 텐데요.
-무슨 소리셔요. 저는 환자분들 오면 여든 넘어서야 이제 좀 할아버지 소리 들을 만하다, 라고 이야기해요. 요새 예순, 일흔 넘으신 분들한테는 할아버지라고 할 수도 없어요!
심혈관센터 의사 선생님 앞에서 나이 든 유세(?)를 털어놓으며 오래 살면 안 된다는 지론을 또 펼치시는 우리의 여든 오빠. (하지만 여든 오빠는 일흔을 앞두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이코, 여든 넘어서까지 살아서는 안 될 텐데요.")
섬에서 나고 자란 여든 오빠는 특히 고향을 떠올리며 오래 살아서는 안 될 이유를 찾는다. 고향에 가도 함께 뒹굴었던 친척들이나 이웃들이 거의 없다. 뭍으로, 도시로 떠나서이기도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오래오래 살아남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든다. 나이가 들수록 여든 오빠는 '소수'의 사람들이 되어 가는 부담을 떠안는다. 그 부담감 때문인지 여든 오빠는 이런 시를 종종 떠올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진히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메 끝에 홀로 오르니
한 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정지용 <고향> 중에서
3대 거짓말 가운데 하나가 노인의 '일찍 죽어야지'라고 한다. 늙은 아이인 큰딸은 이런 만년 거짓말쟁이(?) 부모님을 모시고 혹은 데리고 산다.
-엄마, 근데 아까 뭐라고 그랬어? 백 살까지 사세요, 라는 소리를 하는 건 무슨 악이라고? 차악?
-아니, 죄악이라고 죄악.
차악도 아니고 최악도 아니고 죄악이란다. 백 살가지 사세요는 '늙어가도록 계속해서 사세요'라는 소리이고 이건 어쩌면 죄를 짓는 일이란다. 죄를 짓지 않고서야 늙기만 하는 재주만 부여받아서야 쓰겠냐는 뜻인 듯하다. '요리 언니'의 말을 달리 해석해 보자면 '그냥 사는 것'과 '제대로 사는 것'은 결이 다른 삶이란 소리다. 대책도 없이 늙기만 하는 미래가 두려우신 걸까.
그러나 젊어도 보고 늙어도 본 부모님에게 '늙은 아이'는 이렇게 청하고 싶다.
죄를 지은 건 부모를 좀 더 정성껏 모시지 못하는 이 딸내미 죄이고 딸내미 몫이지요.
건강한 죄악으로라도,
그저 우리 곁에 오래오래 머물러 주셨으면,
그렇게 함께 늙어가요, 우리.
*등장인물 간략 소개
1) 여든 오빠: 여든 고개를 넘어온 아버지. 초등학생 대하듯 하나씩 알려 주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
2) 요리 언니: 초등학생 대하듯 가르쳐 주는 것을 가장 잘하는 편이다. 여든 오빠의 아내.
3) 늙은 아이: 1번과 2번의 반려견, 아니 반려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