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어려서 갖고 놀던 장난감을 치울 수 있게 되면서 비로소 집안에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 덩치 큰 블록과 온 집안을 구르는 중장비 장난감을 들어내는 것만으로도 집이 두어 평쯤 넓어지는 기분이었다. 거실에서 알록달록 뽀로로 매트를 걷어내던 날엔 정말이지 만세삼창이 절로 나왔다.
물론 그 뒤로 아이들의 물건은 수시로 집안을 들고 났다.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다룬 교구와 작품들, 새로 산 장난감, 지인에게 선물 받은 각종 문구와 팬시류가 얼마간 아이들 곁을 머물다 떠나기를 반복했다.
그 와중에 레고만은 예외였다. 아이의 손끝에서 한번 완성된 레고는 옷장이나 책장 위 어딘가에 올라 위풍당당 자리를 지켰다. 아이의 조립 실력이 늘면서 작품의 위용 또한 더해만 갔다. 그것은 놀잇감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인테리어 소품이었다. 레고 작품 틈새로 작은 먼지가 내려앉기 시작했고 시간의 더께만큼 먼지도 쌓여만 갔다.
그렇다고 레고는 쉬이 처분할 성질의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아이는 수많은 피스의 제자리 찾기에 열을 올렸었다. 몇 날 며칠이고 그 조그만 등을 잔뜩 웅크린 채 어딘가에 꼭꼭 숨어든 얄미운 피스들을 찾아내느라 두 눈이 벌개지기도 했다. 제 손가락보다 훨씬 작은 피스를 집어든 채 한 땀 한 땀 수놓듯 블록을 완성해 나가던 어린 건축가의 모습이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엄마, 나 이 레고들 팔아서 큐브 살래요. 사야 할 큐브들이 너무 많거든요. "
그것은 오래 준비해 온 결심과도 같았다.
어느 무렵부터 아이는 광활하고 오묘한 큐브의 바다에 빠져 지내고 있었다. 도전하고픈 큐브가 자꾸만 보인다 했다. 같은 종류라도 색깔과 질감을 포함한 디자인, 회전 성능, 코너컷에 따라 큐브의 질은 천차만별이인 탓이었다. 더욱이 스피트큐빙에 몰두하면서 아이의 관심은 '어떻게 하면 좀 더 성능 좋은 큐브를 구할 수 있을까'에 쏠리고 있었다.
선뜻 레고를 사겠다고 나선 사람은 작품의 완전 분해를 원했다. 그것은 다른 말로 하면 애써 쌓아 올린 레고성을 최후의 피스 하나까지 제 손으로 완전히 해체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엄마, 나한테 '이거 만들 때 OO가 얼마나 힘들어 했는데'라든지, '이 부분 완성하고는 기뻐 날뛰었잖아' 하는 말은 절대 하지 말아요. 그럼 너무 괴로워지니까."
입을 꾹 다문 아이는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애써 참아가며 찬찬히 작품을 허물기 시작했다. 그런 아이의 모습 위로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 3>의 한 장면이 선명하게 오버랩되었다. 주인공 앤디가 자신의 어린 날의 분신과도 같았던 장난감 친구들에게 작별을 고하며 의연히 그들을 떠나보내던 장면. 여전히 소중한 존재임에도 인생의 한 발을 성큼 내딛기 위해 친구들과의 이별을 덤덤히 받아들이던 작은 어른의 모습에 나는 눈물을 와락 쏟았었다.
그랬던 내 눈앞에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아이가 꼭 앤디의 모습을 하고 나타날 줄이야. 제 것이라면 무엇이든 소유하려고만 들던 아이가, 영원히 어린애의 미숙한 모습으로 머물러 있을 줄로 알았던 내 작은 아이가 말이다. 그랬던 아이가 자신의 한때를 추억이라는 상자에 곱게 담아 결연하게 떠나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불쑥 자라난 아이를 나는 곁에서 묵묵히 돕기 시작했다.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자신의 어린 날을 갈무리하는 그를 마음으로 힘껏 응원하면서.
집은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의 장이다. 우리는 그 안에서 사랑하며 정든 것들을 떠나보내는 동시에 변화하고 성장한 나를 비출 새로운 대상을 맞아들이기를 반복한다. 실내 디자인을 손보지 않아도 집이 이따금 모습을 달리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눈에 띄는 아이들의 성장 만큼이나 집 공간의 변화 또한 여실하기 때문이리라. 그렇다. 아이의 다채로운 호기심과 관심사를 말해주던 교구와 장난감이 걷힌 자리에는 보다 확고한 취향의 열매가 자리잡는 중이었다.
'집은 사람을 닮는다'고 했다. '집은 사람과 함께 자란다'는 말을 덧붙이고 싶어졌다. 아이와 나, 그리고 우리가 머물며 한 뼘 자라난 자리에는 또 다른 생장의 기운이 싹을 틔운다고 믿는다. 각자의 방과 가구, 그리고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공간 구석구석에는 이전에 없던 싱그러운 이야기들이 수줍게 피어날 것이다.
조금 느긋한 마음으로 집을 돌아본다. 우리가 머무는 공간이 아직 덜 자란 구석은 없는지 눈여겨 본다. 아이들의 커가는 속도를 미처 따르지 못하는 물건들이 꽉 막힌 도로의 상황처럼 정체해 있진 않은지, 혹은 앞서 자라난 집의 어떠한 모습이 저만치 우리를 앞질러 가고 있지는 않은지를 말이다.
나와 내 아이들이 좋은 사람으로 자라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우리의 공간 역시 언제까지고 근사한 공간으로 머물러 줄 것이다. 그렇게 매 시절, 매 순간 나의 사랑하는 집과 삶의 보조를 같이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