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기가 있다고 빨래가 다 되는 건 아니다. 흔히 우리가 빨래라 여기는 과정 즉, 더러워진 옷감을 세탁기에 넣어 때를 빼고 헹구고 물기를 짜는 것만이 빨래의 전부는 아니라는 말이다. 빨래는 어쩔 수 없이 사람의 손을 탄다. 빨랫감 분류에서부터 널어 말리기, 개키기, 수납에 이르는 일련의 긴 수작업이 동반된다. 사전에 얼룩을 비벼 빨거나 다림질로 옷감 주름을 펴야 할 때도 있다.
게다가 날이 궂을수록 시간과 품이 많이 드는 일이 빨래다. 날씨의 영향을 크게 받아 종종 통제의 범위를 넘어서는 탓에 애를 먹인다. 요즘 누군가 '이렇게 무덥고 습한 날 어떻게 지내냐'라고 물어 오면 나는 '집에서 빨래하며 지낸다'라고 대꾸하곤 한다. 다소 엉뚱한 대답 같지만 이것은 여실한 나의 형편이다. 눈을 떠서부터 하루를 마감하기까지 신경이 온통 빨래에 가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눈치채셨으리라. 우리 집에는 건조기가 없다.
이모님 3대장으로 불리며 건조기와 식기세척기, 로봇청소기가 살림 필수가전으로 자리잡아가는 시대. 살림 트렌드에 전혀 발맞추지 못하는 나는 누가 봐도 뒤처진 살림 바보다. 할 수 없는 노릇이다. 덩치 큰 가전을 들일만한 공간의 여력도 없거니와 이미 열이 오를대로 오른 지구를 생각하면 건조기는 여전히 쉽게 결정내릴 수 없는 소비 품목 가운데 하나다.
치러야 할 대가는 자명하다. 지리한 장마철이 오면 빨래 말리기에 총력을 다한다. 긴 비가 멎길 기다렸다가 해가 반짝 나면 빨아 둔 빨래를 냉큼 건조대에 펼쳐 넌다. 선풍기를 동원해 바람을 쏘이다 그마저도 해가 떨어지면 자연건조에 대한 희망을 접는다. 습도 높은 철 하루 종일 널어놔도 마르지 않는 빨래란 이틀, 삼일을 기다려도 소용없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덜 마른 빨랫감을 욱여넣은 캐리어를 질질 끌고 동네 빨래방으로 향하는 일만은 없기를. 헤어드라이기가 발벗고 나설 차례다. 고맙게도 드라이기는 본연의 쓰임이 무색할 정도로 건조의 골든타임을 놓친 옷감을 살리는 데 탁월한 도구다.
아무리 궂은 날씨라도 그날의 빨래 일상을 거를 수는 없는 법이다. 오래 방치한 옷감에서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냄새가 나는 날엔 몸도 마음도 정말로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이 되고 말테니까. 아무리 적은 양이라도 그날의 빨랫감은 그날 해결할 것. 이것은 십수 년간 집안일을 다뤄오며 세운, 나름 중요하게 여겨온 살림 원칙이다.
빨래가 단순히 몸을 쓰는 기계적 노동에 지나지 않는다면 매일의 살림은 고달픔의 연속일 것이다. 하지만 내게 있어 그것은 단순 노동, 그 이상의 것이다. 빨래는 돌봄이다. 소중한 사람의 옷을 대신 빨아주는 건 단순히 그가 입었던 옷의 얼룩을 제거하는 일만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그가 만만찮은 하루를 보내느라 쏟았을 힘과 노고, 열정을 알아주는 일이요, 더불어 흘렸을 땀과 눈물을 묵묵히 닦아주는 포옹의 행위다. 더 나아가 하루치 시름을 잊고 새로운 하루를 호기롭게 시작하도록 그에게 용기와 기운을 북돋아주는 일이기까지 하다.
매일 쏟아져 나오는 우리 집 4인 가족의 빨래 양은 어마하다. 거기에 수건과 침구류 빨랫감까지 더해지는 날은 그만 울고 싶어진다. 그럼에도 쨍하고 해 뜬 날 젖은 빨래를 팡팡 털어 볕에 널고, 해가 질 무렵 바싹 마른 옷감을 설설 걷어 착착 개킬 수 있다면 그런 날은 제법 괜찮은 하루다. 꽤나 행복한 하루이기까지 하다. 나와 가족이 마주할 하루의 일상이 잘 건조되어 가는 빨래와 같이 무탈하리라는 좋은 예감에 빠져들고 만다.
몸과 마음을 쓰지 않고 절로 되는 빨래란 없다. 거듭 밝히건대 빨래는 세탁기가 하는 게 아니다. 세탁기는 거들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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