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로 지내면서 하루에 돈 만 원은 벌었으면 한다. 그 돈으로 4-5천 원 하는 커피 한 잔을 맘 편히 사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좋아하는 재료가 담뿍 올려진 샐러드 한 팩을 여유롭게 집어들 수 있는 일상이면 좋겠다. 계절의 빛깔은 선명한데 기분이 울적한 날, 동네 꽃집에 불쑥 들어가 모양과 향기가 낯선 꽃 몇 송이를 고르고 스치기만 해도 화한 기운이 도는 허브 줄기 몇 대를 집을 수 있는 쌈짓돈이 내게 있으면 좋겠다.
홀로 집에 머무는 낮시간, 남은 찬으로 끼니를 삼기엔 부실하고, 그렇다고 새 음식을 만들기도 마뜩지 않은 날엔 떡볶이에 김밥 한 줄 흔쾌히 불러먹을 수 있는 여유를 꿈꾼다. 아이들 운동화에 밴 때가 유독 마음에 짐이 되는 어떤 날엔 고민 없이 세탁소에 들러 턱 맡기고 돌아설 수 있는 배짱도 필요한 법이다. 그렇게 이유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돈 만 원이 매일 손에 쥐어졌으면 한다. 돈의 용처를 가계의 장부에 기입하지 않아도 되는, 반드시 생활을 위한 용도가 아니어도 괜찮은, 더도 덜도 말고 꼭 돈 만 원만큼의 느긋함과 너그러움이 말이다.
그런 생각을 오가며 시시로 하루 돈 만원 벌 궁리를 한다. 반찬거리 하나를 사더라도 돈 천 원 아끼려 여러 마트를 기웃하는 내가 당당히 하루의 풍미 좋은 커피를 청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옆지기가 벌어 온 돈으로 장을 봐 오고 생필품을 사들이는 일은 응당 마땅하다 여기면서 커피 한잔 값을 치르는 일에는 왜 그리 스스로 인색하게 되는 건지. 순순히 생활을 이어가기 위한 비용은 필수로 치면서 주부의 쉼과 여유, 기분전환을 위해대가를 지불하는 일은 이다지도 어려운 선택인 건지, 스스로도 모를 일이다.
돈 만원 쓰기가 우스운 세상이지만 주부가 매일의 살림의 고단함에 절망하지 않도록 해 주는 돈이라면 그것은 매우 큰돈이다. 용도와 이유를 따지지 않는 돈 만 원을 손에 쥔 날은 꼭 그만큼의 여유와 넉넉함이 따를 것이다. 밥을 배불리 먹고도 커피에 디저트까지 챙기는 사치를 부린 날은 비록 식탁 위에 별미 반찬을 올리지 못하더라도 더 좋은 기운을 식구들에게 선사하게 될 것이다.
집에 있는 물건 중 당근에 올릴 만한 게 뭐가 있지? 가끔 청소일을 해 볼까? 내친김에 정리수납자격증을 따서 벌이를 해? 바라기로는 지금처럼 관내 신문 주민 기자로 활동을 하면서도 어딘가에서 글 기고 요청이 꾸준히 들어오면 좋을 텐데. 쓰고 싶은 글을 쓰면서도 큰 공모전을 하나쯤 치르는 게 좋을 지도 몰라.
아끼고 또 아껴 적은 돈으로 잘 살아내는 것이 내 살림의 지향점이 되지 않기를. 어떤 경우라도 얼굴에 생기와 웃음을 잃지 않는 고아한 살림꾼이 될 것. 매일 마주하는 생활의 질고를 조금은 유연하게 헤쳐나가는 지혜가 있기를. 무엇보다 매일 좋아하는 것으로 자신에게 한 턱 크게 쏠 줄 아는, 그런 넉넉한 사람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