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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과 낭만 사이

낭만 한 스푼을 찾아

by 서지현

동네 카페에 들렀다가 두 팔 걷어붙이고 청소에 나서고픈 욕구를 누르느라 아주 혼이 났다.



그 일은 휴지 조각에 몇 방울 물을 떨어뜨려 가볍게 테이블을 가볍게 닦는 일로 시작되었다. 시선이 미친 곳 테이블 위 스탠드의 초록갓이 부옇다. 자연스레 손을 뻗어 두터운 먼지를 걷어냈다. 그러고는 카페 내부를 찬찬히 둘러보는데 성가신 눈엣가시들이 차례로 눈에 들어온다. 먼지로 말끔치 못한 선반과 흐릿한 유리창, 언제 닦았는지 모를 정도로 검게 얼룩진 바닥까지. 아예 한쪽 바닥 모퉁이에는 몸집을 불린 먼지뭉치가 뭉게뭉게 몰려 있다. 아기자기 카페 소품들은 세월의 더께를 그대로 뒤집어쓴 채 처음 놓였을 법한 제자리를 꼼짝없이 지키고 앉아 있다.



카페 화장실 상태는 절정이다. 이게 우리 집이었더라면 당장 누구(손님)라도 들이닥칠까 조마했을 것이다. '하루면 적지 않은 손님이 드나들 텐데' 하는 생각에 미치자 내가 카페 주인장이라도 된 양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청소솔로 바닥을 북북 문질러 닦고 싶다' 하는 생각에 미쳤을 땐 '대체 내가 왜 이러지?' 하며 머리를 세차게 흔들고 말았다.



나름 소문을 듣고 찾아온 카페였다. 샤로수길의 번화함에서 슬쩍 비켜선 위치 덕에 값은 싸지만 커피맛은 어디에도 뒤지지 않고 공간이 아늑해 혼공에 좋다고 알려진 커피 맛집이었다. 과연 커피도 맛있고 매장 인테리어에도 젊은 감각이 돋보였다. 요소요소 포인트 조명을 잘 둔 덕에 몰두의 시간을 보내기 썩 좋아 보였다. 매서운 주부의 눈으로 공간 구석구석을 스캔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런 자신을 나무랄 수밖에 없었다.





불과 몇 분 전 나는 초대받은 손님의 설레는 마음으로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왔었다.



아침나절 이불을 개켜 침구를 정리하고, 밥 먹은 그릇도 말끔히 씻어 엎고, 화장실 물청소까지 속시원히 마쳐놓고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집을 빠져나온 참이었다. 잠시라도 생활감 깃든 공간을 뜨고 싶었다. 입고 먹고 씻고 몸을 누이느라 묻어난 흔적을 벗어나 한 발작 떨어진 곳에서 스스로의 삶을 바라보고 싶었다. 글을 쓰며 소중히 해 온 정신적 가치에 잠시 맘을 묻을 수 있는 곳이라면 족했다. 그렇게 나는 생활과 분리된 곳 어디메에 있을 낭만 한 스푼, 영감 한 조각을 찾아 인근 카페를 찾아온 것이었다.



집안에 머물 때 나는 좀처럼 쉬지 못하는 사람이다. 살림을 매만지며 오랜 시간 종종대다 가까스로 엉덩이를 붙여보지만, 여기도 저기도 눈에 밟혀 작은 여유조차 누리질 못한다. 그러다가 어렵사리 집을 빠져나와서는 까끄름한 눈으로 카페 이곳저곳을 힐긋거리는 꼴이라니. 이 소탈치 못한 성격에 은근히 부아가 치민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공간에 대한 기준이 높고 여간한 공간에 쉽사리 녹아들지 못하는 이유는 결국 내 집이라는 하나의 공간을 부리고부터인 걸 말이다.



돌려 말하자면 나는 좋은 공간을 쉬이 알아채고 그로부터 좋은 기운을 얻는 사람이다. 유행하는 건축 스타일이라거나 주인의 취향이 빼어나다 해서 완벽한 공간은 아니다. 주인장의 마음이 얼마나 공간을 향하고 있는지, 그의 손길이 공간 구석구석에 미치고는 있는지, 공간을 보면 위인의 어떠함이 보인다.




순간 나는 밑이 간지러워지면서 엉덩이를 들썩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차라리 천성이 개구진 어린아이 하나가 저 육중한 카페 문을 밀고 들어와 먼지를 풀썩이며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니면 어떨까. 깨는 상상에 객쩍은 웃음이 났다. 이토록 말짱한 공간에 와 있으면서 내 마음만은 어디에도 안착 못하고 실바람에 부유하는 작은 먼지와도 같아서.



성능 좋은 BOSS 스피커에서는 듣기 좋은 재즈멜로디가 매끄럽게 빠져나온다. 위잉, 위이잉 위용 있는 기계음과 함께 터져나오는 강렬한 에스프레소 향만이 이곳이 집 아닌 카페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멀리서 어렴풋이 보아야 낭만인 것을.



나는 신선하게 내려진 커피 한 잔을 황송하게 받아들고서 지금, 여기, 나만의 낭만에 몰두하려 애를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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