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을 지내며
우리가 학교에서나 일상에서 잘 쓰지 않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죄’, ‘고난’, ‘회개’, ‘은혜’, ‘찬양’, ‘구원’과 같은 말들입니다.
위 말들은 주로 예배드릴 때나 설교 중에 듣는 단어들이지요. ‘교회 안의 말들’이라 생각하기 쉽고 현실과 동떨어진 단어라 여길 수도 있습니다. 교과서나 학교 시험에 나오는 법이 없고, 친구와 그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을 일이 없으니까요.
여러분도 위 단어들이 막연하고 멀게 느껴지나요? 혹시 콧잔등을 뚫고 올라온 여드름 한 알이나 지갑 속 용돈 액수보다 관심이 덜 가진 않나요?
하지만 단어의 실체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해서 중요치 않은 게 아닙니다. 오히려 이 단어들은 우리의 현실과 가장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건 다름 아닌 ‘죽음’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예외 없이 ‘죽음’이라는 질문 앞에 서야 할 존재들입니다.
제가 매일 오가는 길목, 장례식장 곁에는 막 새순을 터뜨린 봄꽃이 찬란하게 피어 있었습니다. 생명과 죽음이 공존하는 그 강렬한 장면 앞에서 저는 잠시 할 말을 잃었습니다.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죽음은 언제나 내 곁에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내가 죽음 앞에서 떠올리게 될 단어는 ‘시험 성적’이나 ‘돈’이 아닌, ‘죄’와 ‘구원’, 그리고 ‘예수님’이 될 거란 사실을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나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마침내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나신 그분은 모든 믿는 자들을 대표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교회력에 따라 우리는 이번 한 주를 고난주간으로 지냅니다. 잠시 마음의 소란을 잠재우고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나아가 보는 건 어떨까요? 그 감당할 수 없는 사랑 앞에서 ‘죄’가 ‘용서’로, ‘두려움’이 ‘구원’으로 바뀌는 기적을 경험하길 소망합니다. 글의 서두에서 말한 단어들이 내 삶을 환하게 밝히는 구체적인 말들로 피어나길 간절히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