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철 거리를 거닐다

우리 동네 이름은 대학동인데

by 서지현


대학동의 애칭, '녹두거리'에 얽힌 사연이 있다. 1975년 서울대학교가 현재 위치로 이전하면서 대학동은 대학생들의 생활문화 중심지로 부상했다. 자연스럽게 동네는 나라의 미래를 염려하고, 체제와 권력에 도전하는 젊음의 피로 들끓기 시작했다. 그들은 주로 학사주점에 모여 치열하게 시국을 논했다.



그즈음 ‘녹두거리’라는 동네 애칭도 생겨났다. 허름한 지하에 자리 잡은 ‘녹두집’의 이름을 본뜬 명칭이었다. ‘녹두집’, ‘녹두호프’, ‘태백산맥’, ‘한마당’ … 지금은 재정적인 이유로 사라지고 없는 그리운 주점들이다. 다만 ‘녹두호프’라는 가게만이 여태 살아남아 대학동 학사주점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서울대학교의 대학가 역할을 해 온 대학동. 동네 골목과 거리 언저리마다 민주화를 향한 열망과 외침이 묻어있다. 2020년 6월 관악구는 6‧10 민주항쟁 33주년을 맞아 박종철 열사의 숭고한 민주정신을 기리기 위해 ‘박종철벤치’를 설치했다. 벤치가 조성된 곳은 박 열사가 서울대 언어학과 재학 당시 하숙하며 머물던 터로, 앞서 2018년에 박종철 거리(대학 5길 7)로 지정된 바 있다.



박종철(1964년 4월 1일~1987년 1월 14일, 부산 출생)은 학생 운동가이자 민주 열사(烈士)로 1987년 1월 14일,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로 불법 연행돼 물고문으로 숨졌다. 그의 숭고한 희생은 6‧10 민주항쟁의 기폭제가 되었으며, 결국 오늘날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계기가 됐다.



‘박종철벤치’ 조성 사업은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와 함께 서울대 동문의 자발적 모금과 관악구 측의 예산 지원으로 이루어졌다. 제작은 서울대 미술대학이 맡았다. 벤치에는 열사의 생전 모습을 본뜬 좌상이 놓였고, 그의 옥중 서신 일부인 “저들이 비록 나의 신체는 구속을 시켰지만 나의 사상과 신념은 결코 구속시키지 못합니다”라는 글귀도 새겨져 있다. 담장 한 편에는 열사의 모습을 담은 동판이 세워졌고,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열사의 모습이 벽화에 담겼다. ‘박종철벤치’ 제작에 참여한 기념사업회는 “박종철 열사가 가장 치열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이곳에서 편안히 머물 자리를 마련해 주고자 한다”며 벤치 조성의 의미를 밝혔다.



향후 관악구는 박종철 거리를 ‘민주주의 길 마을관광 사업’의 중심지로 조성할 계획이다. 사업의 일환으로 박종철 거리 내 도덕소공원 부지의‘박종철센터’가 2023년 3월 준공을 목표로 조성 중에 있다. 구는 열사의 유품과 기록물을 전시하는 등의 노력을 통해 센터를 민주주의 교육을 위한 장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오늘도 박종철 거리를 거닐어본다. 익숙하고 평범한 이 대학동 거리를 걷노라면, 이곳이 품은 역사적 사연 앞에서 숙연해지고 만다. 오늘의 민주주의란 어느 꽃다운 이의 숭고한 희생 위에 세워진 것이요, 내가 누리는 숱한 자유마저도 거저 된 것이 아님을 되새겨 본다.



오늘도 대학동은 민주화의 숨결을 품고 있다. 혹여 우리 동네 박종철 거리를 지날 일이 있다면, 잠시 걸음을 멈추고 열사 곁 벤치에 앉아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는 것은 어떨까? 당신의 작지만 평화로운 일상이 더없이 소중하게 다가올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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