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해 보이나 없으면 생활에 지장이 생기는 것들이 더러 있다. 머리끈, 면봉, 손톱깎기, 안경닦이 천, 그리고 어쩌면 양말.
양말을 신지 않은 발은 허전하고 민망하다. 해가 갈수록 손 발에 찬 기운이 더해진다. 집 방바닥이 맨발에 와닿는게 마뜩찮다. 맨발로 신발을 신는 건 더한 일이다. 신발 속에 안착하지 못한 발이란 자꾸 엇나가는 사춘기 아이와 같다. 자꾸만 미끄러지는 게 영 따로 노는 느낌이다. 한 꺼풀 보호막을 입지 못한 발이 종일 조심스러워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양말 트럭 아저씨를 찾습니다
대학동(고시촌) 생활정보 애플리케이션 수다방에는 오늘도 양말 트럭 아저씨를 찾는 문의가 줄을 잇는다.
'양말 트럭 아저씨 어디 계신가요?'
'양말 아저씨 좌표 좀 알려주세요. 복 받으실 겁니다.'
'일요일도 양말 트럭 사장님 오시나요?'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재미난 동네 풍경이다. 고시촌 거주민들은 왜 그리도 간절히 양말 트럭을 찾고 기다리는 것일까? 답은 단순하다. 대학동에는 양말을 살만한 곳이 마땅찮기 때문이다. 요즘 같이 물류산업이 성황인 시대에 인터넷이 더 싸고 편리하지 않은가? 물론 대량주문에는 온라인 구입이 훨씬 합리적일지 모른다. 그러나 당장 신고 나가야 할 양말을 느긋하게 주문하고 기다릴 여유가 없다. 게다가 집에 둔 양말이 한꺼번에 구멍 날 리 없다. 한 두 켤레 양말을 사기에 트럭만 한 데가 없는 것이다. 한 켤레에 보통 1000원, 개당 가격이 싸기도 하다.
안타깝게도 양말 질은 좀 떨어진다는 게 전반적인 평이다. 온라인 주문으로 구입한 양말이 훨씬 튼튼하고 오래간다더라. 그래도 괜찮다. 얼마 안 가 양말이 또 구멍 나면 맨발로 뛰쳐나가 트럭 아저씨를 찾으면 된다. 할인도, 적립도, VIP 우대도 없지만 필요의 즉각적인 충족이 이 모든 것 위에 있다. 한번 연을 맺으면 끊을 수 없는 양말 트럭 아저씨와의 인연이다.
'양말 트럭 아저씨 지금 장우동 앞에 계십니다'
양말 트럭은 대학동 황금마차다. 길가다 보면 늘 눈에 띄는 것 같지만 막상 나가면 사라지고 없는 마법 같은 마차. 그래서 그렇게들 양말 트럭의 좌표를 추적하고, 한편에서는 실시간 댓글 달기에 열을 올리는 것이다.
'포도나무 김밥집 앞에 자주 오세요.'
'아마스빈 근처에도 자주 계시던데요?'
묻기도 전에 부러 트럭의 좌표를 일러주는 친절한 이웃도 있다.
'양말 트럭 아저씨 11시경에 레커훈스, 탁배기 앞에 계십니다.'
'양말 트럭 현 시각 11시 54분 장우동, 구백 냥, 곱창 근처에 있습니다.'
양말 트럭의 좌표를 알리는 글에 감사 댓글이 실시간 달리는 걸 보면 오지랖은 아닌 듯싶다.
'오늘 비 와서 양말 트럭 아저씨 안 오시나 봐요. 아, 양말 안 신으니까 엄청 불편하네요. 양말의 소중함을 새삼 느낍니다.'
양말처럼 사소하지만 없어서는 안 될 것들이 있다. 그리고 그 소중한 것들의 필요를 알게 모르게 채워주는 존재가 있다. 사소한 양말짝 하나로 소통하며 정을 나누는 이들, 이것이 대학동의 정취다. 나도 길을 지나다 어쩌다 양말 트럭을 보게 되면 당장 앱을 켜고 트럭의 좌표를 올려야 할 것 같은 거룩한 의무감에 사로잡히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