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를 하면 할수록 된장 신봉자가 되어 간다. 된장을 약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외식만 했다 하면 과식이라 그런 날은 집에 돌아와 된장국을 끓여 먹는다. 해독에는 된장만 한 게 없기 때문이다. 아파도 된장이다. 온몸의 에너지를 열을 내는데 쓰느라 소화기가 약해지기 때문에 무조건 소화 잘되는 된장인 것이다. 맛의 측면에서도 믿고 먹는 된장이다. 친정 엄마 말씀이 잘 끓인 된장국은 쇠고기 국보다 맛있다, 하시더라.
된장녀, 된장남, 된장질. 통용된 지 이미 오래인 용어들이다. 매일 카페에 들러 밥보다도 비싼 커피를 즐기는 사람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았다. 하물며 왜 하필 된장인가. 된장을 소중히 하는 나로서는 된장에 대한 모독이요, 심한 비하가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햇살과 아이와 동화책, <카페 여기>에서
말이야 어찌 됐건 본격적으로 된장질이 시작됐다. 첫째 아이가 유치원에 가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둘째 딸아이는 여전히 품에 끼고 있었으니 육아의 연장선상이긴 했다. 그러나 곁에 두어도 크게 힘이 들지 않는 아이가 있다. 딸아이가 그랬다. 카페에서 엄마와 단 둘이 머무는 시간을 아이도 사랑했다.
나의 카페, <카페 여기>가 막 문을 열면 나와 딸아이가 처음으로 발을 들였다. 손님이 드문 오전 시간대였다. 우리가 좋아하는 창가 자리에는 햇살이 유난했다. 창을 투과하는 넉넉한 빛에 마음까지 밝아졌다. 아이에게 몇 권의 동화책을 읽어주었다. 새삼 달콤한 시간이었다.
집에서는 아이에게 온전히 집중한 일이 없었다는 걸 문득 깨달았다. 아이 자체보다 '아이를 위한 일'에 늘 정신이 팔려있었던 것이다. 이를테면 아이가 밥을 먹으면 오물거리는 귀여운 입과 행복해하는 표정보다는 음식물이 잔뜩 묻은 옷가지가 먼저 눈에 들어오고, 아이가 장난감을 꺼내서 놀기 시작하면 치울 일을 미리 염두에 두는 식이었다. 집안일의 자잘한 의무로부터 놓여나 아이와 눈 맞춤하는 여유를 가지는 것이야말로 아이와 내게 꼭 필요한 일이었다.
내가 사랑한 공간, <카페 여기>에서
딸아이마저도 어린이집 등원을 시작하면서부터 오전 시간만큼은 온전히 혼자가 되었다. 아니, 철저히 커피와 함께였다. 커피의 풍부한 풍미가 오감을 만족케 했다. 어쩌면 커피는 내게 된장과도 같은 존재였다. 마음에 쌓인 독소를 해소시키고 신경을 안정시켜 주는. 그것은 기호 식품을 넘어 마음의 양약이었다. 그러고보니 커피에 빠진 사람을 된장에 빗대어 말한 표현들이 꽤나 일리있게 느껴졌다.
여전히 커피의 맛과 향을 사랑한다. 주어진 의무를 다한 후 커피와 함께 즐기는 얼마간의 여유와 한가가 좋다. 커피잔을 앞에 두고 된장을 떠올리며 식구들의 건강을 생각하는 나야말로 이 시대 진정한 된장맘이 아닐까 한다.
다만 된장질이라 하기에는 내 단골 카페의 커피 값이 너무 쌌다. 뿐만 아니다. 바리스타이자 카페 주인장이란 분은 오직 커피 맛에만 골몰해 있어 커피에 곁들일 디저트는 팔지도 았는다. 한 자리에서 커피를 두 잔은 마실 수가 없으니 기껏해야 2500원에서 3000원으로 된장질이다. 굳이 따지자면 <카페 여기>에서의 된장질은 건더기 없는 미소된장이나 간이 심심한 희멀건 된장국쯤 되었던 성싶다.
어찌 됐든 앞으로도 열 일의 대안은 된장이다.
난데없이 카톡 메시지 하나가 날아들었다. '카페 여기'예요. 카페가 갑자기 팔려서 급하게 인수인계를 하는 바람에 작별 인사도 못했어요. 그동안 우리 카페 좋아해 줘서 감사해요.' 메시지를 읽고서 한동안 멍한 체로였다. 카페와의 인연은 거기까지였다. 돌아갈 수 없기에 더욱 그립다. 나의 <카페 여기>는 <카페 어디>가 되고 말았다. 카페가 자취를 감추면서 이 글이 단순히 카페 방문 후기글이 되지 않은 것만은 다행스럽다. 내가 사랑한 카페 <카페 여기>를 통해 공간이 주는 힘의 위대함을 깨달았기에 지금도 나만의 방을 찾아 헤매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