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동의 신선계, 꼭대기 집에서의 고립 육아를 버텨낸 것은 아이에 대한 사죄의 마음이 큰 탓이었는지 모른다. 그 어느 때보다도 면역력이 중요한 시기에 아이를 반지하 방에서 키워냈다는 것도 애석한 일이지만 실은 또 하나, 마음 아픈 사연이 있다.
첫째를 어린이집에 보낸 건 아이가 아직 말이 트이지 않은 18개월 때였다. 아이는 온몸으로 떼를 썼다. 때로는 울음으로,때로는 몸부림으로 저항했다. 어린이집에서는 다들 그렇다고, 시간이 지나면서 잘 적응해 나갈 거라고 했다. 온몸으로 거부 의사를 밝히는 아이를 보면서 조금 이른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뱃속아이를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선택처럼 생각되었다.
어린이집 선생님의 말씀대로 차차 아이의 울음 끝이 짧아졌다. 어느 날은 선선히 어린이집 문을 열고 들어가기도 했다. 더디지만 이렇게 기관에 적응해 가는 건가, 안도할 참이었다. 그러나 아이는 자주자주 아팠다. 잦은 감기과 장염, 독감에 수족구까지, 훑지 않고 지나가는 질환이 없었다. 물론 비염은 기본으로 깔고서 말이다. 어린 나이에 공동생활을 하다 보니 쉽게 바이러스를 옮아오나 보다, 단순히 그리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는 급기야 장폐색으로 입원 신세가 되었다.
아이를 간호하며 그간 어린이집에서 보내온 활동 사진을 무심코 넘겨보았다. 그러다 갑자기 뒤통수를 맞는 것 같은 충격에 빠졌다. 아이가 웃고 있는 사진이 한 장도 없었다. 단 한 장도! 사진 속의 아이는 한결같이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결코 짧지 않은 7개월 간의 어린이집 생활에서, 기관 적응을 마쳤다는 아이가... 이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왜 나는 그간 아이의 표정에서 마음을 읽어내지 못했던가. 아직 엄마 품이 그리운 아이에게 어린이집은 그저 낯선 공간이었던 것을. 아이는 우울했고, 조금도 행복하지 않았다. 그저 살아남기 위한 본능으로 억지로 상황에 발맞추어가고 있었을 뿐. 울어도, 떼써도, 몸부림을 쳐도 소용이 없자 급기야 아이는 몸으로 항변하기 시작했음을. 어리석은 엄마는 일이 크게 터지고서야 사태를 파악했다.
퇴원 후 아이 손을 잡고 어린이집을 찾아갔다.
"선생님, 우리 OO 조금 커서 올게요. 그동안 잘 돌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아이는 선생님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아이는 인사는커녕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어린이집을 잽싸게 빠져나갔다.
그날 이후로 작정했다. 아이가 원하기 전까지는 기관에 보내지 않으리라고. 섣불리 오를 수 없는 이곳, 관악산 꼭대기에 터를 잡은 마당에 무서울 게 무어 있겠는가, 아이를 마음껏 사랑하는 수밖에는. 그동안 숱한 병치레로 제대로 자라지 못한 아이가 무럭무럭 커주기만 한다면야 더 바랄 게 없었다. 모든 걸 내려놓자 차라리 마음이 편해졌다.
꼭대기 집에 머문 지 꼭 1년이 되어가던 날이었다. 어느 날 아이에게 넌지시 물었다.
"유치원 갈래? 이제 우리 OO도 다섯 살인데 선생님이랑 친구들이랑 놀고 싶지 않아?"
아이에게서 긍정을 기대한 건 아니었다. 유치원 입학을 강요할 마음도 없었다. 여전히 아이가 엄마를 원한다면 기꺼이 품을 내주겠노라 다짐하고 있었으니. 그런데 의외로 아이는 관심을 보였다. 유치원 친구들 사진을 보여달라고 했다. 동네 병설유치원 누리집에 실려있는 활동사진을 두루 보여주었다.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보던 아이는 크고 또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나 여기 다닐래."
준신선계에서의 사계
그렇게 해서 아이는 5세 되던 해 병설유치원에 입학했다. 그 말인즉슨 꼭대기 집에 더 이상 머물 수가 없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 작은 아이가 유치원에 오가기 위해 날마다 살인적인 경사를 오르내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당장 하산해야 했다. 하산의 시기는 뜻하지 않게 일찍 찾아온 셈이었다.
이미 무엇이 좋고 중한지 몸으로 알아버린 터였다. 지대가 낮은 곳으로 갈지언정 여전히 자연과 가까운 곳이어야 했다. 결국 우리는 관악산 자락에 들어앉은 한 아파트 단지를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잡았다. 대학동 형세로 말하면 신선계도 인간계도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준신선계쯤 될까. 여전히 지대가 높았지만 원하는 때에 마트에 갈 수 있고 카페도 들락거릴 수 있는 생활권에 들어선 것이었다. 무엇보다 감사한 일은
아파트 뒤로는 관악산으로 연결되는 공원이 자리하고 있고, 아이는 아파트 후문으로 난 산길 산책로로 유치원을 오갈 수 있었다. 이따금 꼭대기 집에서 듣던 딱따구리 울음이 들려왔다. 새 보금자리가 여전히 사위가 자연으로 둘러싸인, 충분히 목가적인 곳이란 사실에 안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