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한들 꼭대기집에서의 육아가 온통 장밋빛이기만 했을까?
흔히들 ‘독박 육아’의 고충을 호소한다지만, 내 경우는 차라리 ‘고립 육아’에 가까웠다. 깎아지른 절벽을 방불케 하는 언덕배기 동네에서 어린아이를 둔 가정을 만난다는 건 애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오가며 마주치는 이웃이라고는 건물 앞을 비질하는 고시원 주인과 그곳을 드나드는 고시생들, 거동조차 불편하지만 형편상 동네를 뜨지 못하는 어르신들, 그리고 자가용으로 언덕을 오르내리며 가까스로 출퇴근을 반복하는 1인 가구가 전부였다. 단 한 명의 육아 동지도 없이 꼭대기집에서 혼자 힘으로 영유아 둘을 돌본다는 건 정말이지 숨이 턱까지 찰만큼 힘에 부치는 일이었다.
커피 한 잔이 건네는 위로란
하루 중 커피 한 잔이 유일한 위로였다. 만성 수면부족에 시달려가며 네 살, 두 살 아이를 돌보는 중에 커피는 남편보다 더 큰 의지였다. 육아에 커피가 없었더라면 어쩔 뻔했느냐고, 그 와인빛 묘약 한 잔의 위안에 감탄하면서 그렇게 나의 커피 사랑은 시작되었다.
나에게 커피는 피로회복제나 강장제, 그 이상이었다. 모든 게 아이 중심으로 돌아가는 삶이었다. 음식은 아이 입맛에 맞게 싱겁고 순하게, 옷은 디자인보다 활동하기 편한 소재로. 짧은 여유라도 누리기 위해서는 하루의 대부분을 아이에게 내주고 난 후 조각나 흩어진 시간들을 부지런히 짜집기해야 했다.
커피 한 잔만은 온전히 나의 것이었다. 커피만큼은 '내 입맛대로'가 가능했다. 나란 사람은 커피의 어떤 풍미에 끌리는지, 향긋하고 산미있는 커피가 좋은지, 고소하고 쌉싸래한 커피가 좋은지. 아주 뜨커운 커피가 좋은지, 조금 식은 커피가 차라리 맛있는지. 커피 한 잔 앞에서 나만의 취향과 기호를 잠잠히 살피는 시간이 좋았다. 그것은 몸과 마음의 상태를 점검하는 척도이기도 했다. 피로도가 높은 날엔 쓴 커피에, 감성에 빠져들고 싶은 어떤 날엔 산뜻하고 신맛 올라오는 커피에 유독 끌렸다.
쾌청한 가을, 대학동 커피 순례를 떠나다
너무 어린 아이들이라 커피 한 잔 마시겠다고 선뜻 집을 나설 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 한 번씩 기가 막힌 타이밍이 왔다. 두 아이가 동시에 낮잠에 빠져든 경우였다. 그런 날은 LG U+ 에 연계해 설치한 휴대폰 CCTV를 켜고 과감히 언덕을 내려갔다. 카페 한 군데를 들러 커피를 테이크아웃 해오려는 것이었다.
대개는 무사히 커피를 날라왔다. 그런데 어쩌다 휴대폰 화면 속의 잠든 아이가 몸을 움찔대면 심장이 쿵쾅거렸다. 숨이 찬 지 어쩐지도 모르고 초능력을 발휘해 단숨에 언덕을 올랐다. 조마한 마음은 긴장으로 타들어가고 온몸이 갈증으로 메말라갔다. 손아귀에 붙들려 한참을 출렁대던 커피는 잔 사이로 흥건히 흘러넘쳐 있었다. 정나미가 뚝 떨어졌다. 미지근하게 식어버린 갈색 액체를 아예 쳐다보기도 싫었다. 다행히 별 일은 없었다. 영유아 둘을 남겨두고 집밖을 빠져나가는 엄마라니. 누군가에게 신고당할지도 모를 일이었다고 지금에 와서 한 번씩 가슴을 쓸어내린다.
잘 그려진 라떼 아트에 잘 대접받는 기분이 든다
첫째가 제법 다리에 힘이 붙기 시작했을 때 아이들을 데리고 언덕길 하산을 시도했다. 하루하루 놓치기 아까울 정도로 쾌청한 가을날이 이어지고 있었다. 뒷산과 공원 외 바깥구경을 해본 적 없는 아이들 눈 앞에 새로운 산책길이 펼쳐졌다. 최대한 인적이 드문 시간대, 하루 한 군데 카페를 찾았다. 엄마는 그 날의 커피를 맛보고, 아이들도 챙겨온 간식을 즐겼다. 그해 가을, 대학동 골목골목을 누비며 흐벅지게 커피를 맛봤다.
대학동 거리는 카페 정글을 방불케 했다. 미로 같은 골목 사이로 카페가 즐비했다. 대개가 소박한 개인 카페였다. (엔제리너스와 투썸플레이스 같은 프랜차이즈 매장이 들어선 건 한참 후의 일이다.) 카페 외관과 내부 인테리어에 힘을 주기보다는 음료나 메뉴를 소신껏 개발해 파는 가게들. 아침을 챙겨먹기 어려운 수험생들을 위해 샌드위치나 간편 샐러드를 내놓는 카페도 더러 있었다. 인적 드문 거리와 골목에도 꽤나 수준 높은 카페가 자리한다는 일본, 그 나라의 카페 거리가 이런 모습일까 상상했다.
매장마다 커피 맛이 달랐다. 카페마다 고유한 커피맛과 풍미를 간직하고 있었다. 개인 가게다 보니 원두를 들여오는 곳도, 취급하는 방식도 다를 터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대학동 카페에 정감이 갔다. 사람마다 커피 취향이 다를 뿐, 세상에 맛없는 커피란 없을 것이다. 내 입에 꼭 맞는 커피를 만나고 싶었다. 원두의 품종이나 생산지, 커피 내리는 기술만을 말하는 건 아니었다. 진심을 다한, 손맛 가득한 커피가 그리웠다.
그래 봐야 꼭 하루 한 잔의 커피였다. 아무리 커피가 좋아도 카페인을 못 이기는 체질이었기 때문이다. 그 한 잔을 가짜 커피의 위로로 채울 순 없었다. 입에 맞지 않는 커피로는 젖양이 차지 않은 아이처럼 종일 칭얼거릴 것이었다. 녹록지 않은 육아와 살림에 뒷심을 발휘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했다. 노곤한 몸을 흔들어 깨우고 영감을 주는 God shot, 어디 대학동에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