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대기집에 오르다

우리 동네 이름은 대학동인데

by 서지현



부득불 가파른 언덕을 오르고 올라 관악산 자락에 터를 잡았다.



우리가 새로 둥지를 튼 곳은 서울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높은 지대에 위치한 빌라였다. 로터스 빌(lotus ville). ‘연꽃’을 뜻하는 ‘로터스(lotus)’라는 이름에서 눈치챌 수 있듯, 그곳은 본래 작은 불교사원이 있던 자리였다. 깎아지른 언덕에 선 건물은 누가 봐도 주거지보다 산중 작은 사원이 자연스러운 위치였다. 새벽부터 울려대는 목탁과 염불소리에 인근 고시생들의 항의가 빗발쳤다고 한다. 결국 절을 부수고 주거형 건물을 올렸다는 사연이었다.



그것은 관악산에 얽힌 고시생들의 사연을 반추하자면 충분히 납득이 갈 만한 일이었다. 한창 고시 열풍이 뜨거울 당시 관악산은 '벼슬산'으로 불렸다. 산세가 좌우대칭을 이루는 데다 봉우리가 솟은 모양새가 갓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별명이었다. 실제로 관악산 절 방 한 칸을 얻어 고시에 매진하는 이들도 있었다. 비록 산속 깊이 들어가진 못해도, 많은 이들이 관악산 기슭의 지대 높은 고시원에서 젊음의 한때를 보냈다.




새 보금자리를 사랑했다. 우리는 그 집을 꼭대기 집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대학동의 리무진 지선버스 5515번이 동네에서 지대 높기로 소문난 현대아파트 앞을 종점으로 드나들었다. 그러나 우리집은 버스조차 닿지 못하는 곳이었다. 버스 종점에 내려서도 한참을 걸어 올라가야만 했다. 택시를 잡아타면 기사가 살인적인 경사에 겁을 집어먹거나 누구에겐지 모를 화를 내기도 했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오직 두 다리에 의지해 집을 오르는 편이 맘이 편했다.



택배서비스가 미치지 못할 곳은 아니었으나, 내심 기사에게 미안한 마음에 온라인 거래를 주저했다. 눈비 내리는 날은 양가 부모님으로부터 어김없이 전화가 걸려왔다. 출근길에 절대 차 가지고 내려가지 말라는 신신당부였다. 집들이 차 우리 집을 방문한 지인은 깔막 언덕을 오르다 숨이 차 생명의 위협을 느꼈단다. 그녀는 경미하게나마 천식을 앓고 있었다.



이러한 지리적인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새 집에서의 삶은 여러 모로 특별했다. 새 보금자리는 확연한 빛의 공간이었다. 자연이 주는 혜택은 어마어마했다. 요즘 말로 햇살 맛집이랄까? 사방이 트인 집에는 그리도 간절했던 햇살이 온종일 쏟아져 내렸다. 유독 하늘에 가까운 우리 집, 푸르고 말간 하늘을 올려다볼 때면 잡념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순수한 마음만 결정처럼 남았다. 아이들은 커다란 베란다 창에 붙어 서서 수시로 상공을 나는 비행기를 눈으로 좇으며 놀았다.




집 바로 뒤편은 관악산 야산으로 이어졌다. 빌라 뒤로는 건물이 딱 한 채 버티고 있었고, 그 뒤로 바로 산으로 통하는 길이 나 있었다. 아이들과는 야산을 집 뒤뜰 인양 수시로 드나들며 흙을 밟으며 놀았다. 그렇게 사계를 산의 기운 속에서 보냈다. 수시로 옷을 갈아입는 나무와 풀과 꽃들 틈에서 우리 일상도 계절감으로 충만하게 젖어들었다.







산속에만 폭 파묻혀 살았던 건 아니다. 아이가 놀이터를 원하는 날도 있었다. 그런 날은 아침부터 마음의 채비를 단단히 했다. 네 살 아이의 손을 잡고 두 살 어린 딸을 아기띠로 안은 채 살얼음판 같은 경사길을 내려가야 했기 때문이다. 5515 버스가 종점으로 드나드는 현대아파트, 바로 그 인근에 자리 잡은 샘말공원(서울 관악구 대학 20길 9)이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놀이터였다.



다 놀고 나서 언덕을 오르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 단순히 고난도가 아닌, 그 자체로 고난 행군이었다. 아이도 힘들다며 떼를 썼다. 내 한 몸에 두 아이의 무게를 고스란히 짊어져야 했다. 그렇게 하루가 멀다 하고 두 아이를 이고 지고 무릎이 떨어져 나가라 살인적인 경사지를 오르내렸다. 내 육아기에 있어 유격 훈련이 아닐 수 없었다. 꼭대기집에서의 생활은 그것 빼곤 완벽했다.



아이가 앓던 비염에도 서서히 차도가 생기고 있었다. 무엇보다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예전 같아서는 아이가 잠에서 깬 직후엔 짜증을 부리거나 울며 엄마를 찾는 게 일상이었다. 코막힘으로 숙면을 취하지 못한 탓이었다. 그랬던 아이가 어느날인가 낮잠에서 깨어나서는 벙긋 웃으며 방문을 열고 나오는 게 아닌가. '코막힘 없이 푹 잤구나!' 그것은 걷지 못하던 아이가 스스로 첫걸음을 떼는 것을 볼 때의 환희였다.



아이를 생각하면 대학동 윗동네를 찾아 올라오길 백번 잘한 일이었다. 관악산 자락에 머문다는 건 주치의를 곁에 둔 양 마음 든든한 일이었다. 이쯤되니 우리의 새 보금자리, 꼭대기집을 사랑하지 않을 요량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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