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동과 첫 연을 맺게 된 것은 2002년도, 한창 공인회계사(CPA) 시험에 몰두하던 친오빠를 통해서였다. 홍대 학원가 인근에서 수험생활을 이어가던 그는 보다 값싼 방을 찾아 대학동 고시촌으로 옮겨온 터였다. 모름지기 그 시절은 그에게 찬 겨울처럼 혹독한 시기였다. 집안 경제가 급격히 기울었던 탓에, 방값과 기본 식비 이외 어떤 비용도 지원받지 못한 채로 큰 시험을 치러내야만 했기 때문이다.
내 상황이라고 해서 크게 나은 건 아니었다. 세상 물정이라곤 전혀 몰랐던 대학교 2학년 시절, 속절없이 향토장학금이 끊겼다. 새 학기를 앞두고는 은행 학자금 대출 신청 기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웠다.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 온라인 은행 창구를 열고 꼼꼼히 절차를 마치고 나면 비로소 안도의 숨이 빠져나왔다. 그러나 큰 불을 껐다는 안도는 잠시, 스스로 생활을 이어갈 궁리를 곧 시작해야만 했다.
그러던 중 오빠에 관한 딱한 사정이 들려왔다. 군것질거리는커녕 우유 한 팩 사 먹을 여윳돈조차 없다는 것이었다. 졸음을 떨쳐내 버리고 싶은 어떤 순간엔 진한 커피 한 잔이 절실한 법인데, 자판기 믹스조차 뽑아먹을 여유가 없다고 했다. 나보다도 오빠의 상황이 훨씬 절박해 보였다. 과외비를 손에 막 받아든 어느 날 나는 무작정 그를 찾아갔다. 대학동 고바위 한 고시원에 머물던 그는 여동생의 방문 소식을 듣고 가까스로 언덕을 내려왔다.
송지현의 대학촌 풍속지도(1985)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우리는 대패 삼겹살을 주문했다. 그마저도 과분한 메뉴였다.
“오빠, 왜 이렇게 경사가 심한 데에 있는 거야, 불편하게.”
“일단 가격이 저렴하니까. 그리고 아무래도 아래쪽 편의 시설하고 많이 떨어져 있어서 공부에 집중이 잘 돼. 산동네라 공기도 좋고... 일단 올라오면 내려가기가 싫어진다니까, 하하.”
그저 그는 그렇게 답하며 사람 좋은 표정을 지어 보일 따름이었다.
종잇장처럼 얇게 저며진 고기 몇 점이 불판에 닿기가 무섭게 사지를 틀며 오그라들었다. 그것은 좀처럼 느긋할 새 없는 우리들 청춘의 삶을 닮아 있었다. 기회가 주어졌을 때 바짝 집중해 결과를 내지 않으면 한순간에 타버려 쓸모없는 고깃 조각이 될지 모른다는 불안들. 그리고 서둘러 목표를 이루기 위해 대수로운 불편과 어려움을 감내해야만 하는 현실. 그런 시대적인 압박 속에서 기를 못편채 오늘도 우리는 애맨 몸뚱이만 부지런히 굴리는 거라고, 지글거리며 기름을 토해내는 고깃조각 앞에서 하릴없이 생각을 이어나갔다.
“원래 이 바닥이 이래. 공부가 절박할수록 위로 위로 올라가게 되더라고. 아무래도 아래쪽에 있으면 유혹이 심하니까. 여기가 예전엔 서울대 대학가 역할을 했을 정도로 먹고 마시기 좋은 동네잖아. 내 경우도 나름 배수의 진을 친 거지.”
“그럼 평소에 오빠는 밑으로는 잘 안 내려오고 고시원에만 있는 거야?”
“한두 달에 한 번씩 홍대 학원으로 모의고사 치러 갈 때만 내려오지. 츄리닝 입고, 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말이야. 모의고사 있는 날은 모처럼 외출하는 기분이랄까? 암튼 그래.”
몇 마디 이야기를 주고받는 동안 내 머릿속엔 이미 위아래로 양분된 대학동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지고 있었다. 모든 편의와 즐거움을 마다하고 오직 위로만 오르기를 자청한 내 눈앞의 한 청년. 그는 자기만의 굴을 파고 들어가 오롯이 꿈을 좇는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가난하기에, 절박하기에, 그리고 더는 물러설 곳이 없기에. 그에 대한 측은함과 경외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묘하게 가슴이 떨렸다.
오빠 호주머니에 돈 십만 원을 찔러주고 발길을 돌렸다. 대학동 아랫동네로 내려올 일은 없더라도, 때때로 우유값, 혹은 자판기 커피값은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문득 궁금한 마음이 들었다. 높이 오르면 오를수록 정말로 꿈에 가까워지기라도 하는 걸까?
신선계와 인간계. 이것은 양분된 대학동 지역의 특색을 맛깔나게 표현하는 일종의 은어였다. 실제 수험생이 주를 이루는 대학동 거주민 사이에서 통용되는, 윗동네와 아랫동네를 구분하여 부르는 명칭이었다.
'신선계'는 대학동에서도 지대가 매우 높은 동네를 통칭하는 이름이다. 행정구역상으로 신림 9동 금호아파트에서 시작된다고 본다. 단순히 지대가 높다고 하면 감이 안 올 것이다. 언덕의 경사가 45-50도 정도, 살인적으로 가파르고 기형적인 언덕이다. 산 중턱에 집과 건물들이 척척 걸려있는 형상이다. 언덕을 오르자면 허리가 폴더폰처럼 절로 접어진다. 허리를 숙이고 거친 언덕을 오르다 보면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다.
'신선계'라는 명칭은 번화가, 즉 속세로부터 얼마간 거리를 둔다는 의미를 품는다. 실제로 시가지로부터 한참이나 떨어져 있어 편의 시설은커녕 인적조차 드물다. 집값도 싸다. 방 하나에 화장실, 샤워실, 에어컨까지 갖춘 원룸이 전기세를 포함, 월 25-28만 원대인 곳이 의외로 많다. 혹자는 산자락 바로 밑이라 콧속에 신선한 공기가 들어오니 '신선계'가 아니겠냐고 우스갯소리를 해댄다. 이또한 일리 있는 설명이다.
한편 '인간계'는 '신선계'의 거룩한 이미지와는 완전한 대비를 이루는 대학동 아랫동네다. 놀거리, 먹을거리가 팔 할이다. 번화한 거리를 중심으로 온갖 카페, 식당, 편의점, 치킨집, 그리고 유흥업소가 즐비하다. 이곳 인간계에서는 생리적 욕구와 타인과 관계 맺고자 하는 열망이 충족된다. 수험생활 중 쌓인 스트레스와 심리적 압박을 풀기에 이만한 동네가 없는 것이다.
앞자리에 '고시'라는 단어가 붙은 '고시식당', '고시서점'은 고시촌에서만 볼 수 있는 가게들이다. 스터티카페, 복사집, 빨래방, 피트니스 등 수험생활을 돕는 가게들도 여전하다. 같은 시험에 매진하는 이들은 스터디나 생활스터디를 결성해 서로 기운을 북돋아준다. 인간계 거리에서는 '우리 다 같이 잘 해보자'하는 의기투합의 기운마저 느껴진다.
저들이 신선계에 머물며 득도를 하든, 인간계에서 범속한 삶을 이어가든 무슨 상관이랴. 나와는 하등에 관련 없는 이야기일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어찌 될지 모르는 게 사람 일이다. 서울대생도 아니고, 그렇다고 큰 시험을 앞둔 것도 아닌 내가 제 발로 대학동 신선계를 오르게 될 줄이야.그것도 혼자 몸도 아니고, 가정을 꾸리고 나서야 뒤늦게 말이다.
꼬박 2년을 신선계에 머물며 꿈에 몰두하던 친오빠는 시험에 합격해 당당히 대학동을 떠나갔다. 그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가 내려놓은 바통을 묵묵히 이어받았다. 뒤늦게라도 수양이 필요한 인생이었던 걸까? 정말이지 그것 외엔 뾰족한 수가 없었다. 대학동 인간계에서 친오빠를 만나 대패삼겹살을 구운 지 10년이 훌쩍 지나서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