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동, 나의 인생 정거장

우리 동네 이름은 대학동인데

by 서지현


때론 목적지보다도 목적지로 향하는 여정이 더욱 아름답다. 정작 여행지에서의 추억보다도 여행지로 향하는 중에 느꼈던 설렘, 사랑하는 이와 나눈 담소가 짙게 남을 때가 있다.



대학동은 인생 정거장이다. 뜨내기의 동네, 인생의 중요한 기로에 선 이들이 시험이나 취업 준비를 이유로 잠시 머무는 곳. 물론 나의 경우처럼 범상치 않은 사연을 가지고 흘러들어온 이도 있을 줄 안다. 분명한 건 땀과 성취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가야 할 분명한 목적지가 있다. 이들은 매일 꿈을 꾸며 내일을 이야기한다.



더 이상 대학동 윗동네, 신선계에 올라 고시에만 몰두하던 친오빠는 없다. 나 역시 첫째 아이 유치원 입학을 계기로 치유의 주거 꼭대기 집을 떠나야 했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우리 둘은 대학동의 반경을 아주 벗어나진 못한 듯하다.



오빠는 공인회계사(CPA) 시험 합격 후 결혼할 사람(지금의 새언니)을 데리고 대학동을 종종 찾았다. 본인이 치열하게 공부하던 곳이라며 한껏 달떠 언덕배기 고시촌을 보여주더란다. 대학동 아랫동네 골목골목을 누비고 다녔다고도 했다. 애쓰는 청춘들을 위로하는 흔적을 일일이 더듬으면서 말이다.


우리 가족 역시 꼭대기 집에서 내려와 대학동 소재 한 아파트에 터를 잡았다. 자연이 우리 인생에 주는 혜택을 제대로 맛본 후 그 품을 아주 떠날 수가 없어서였다. 관악산 자락에 버젓이 자리 잡은 아파트, 이곳은 대학동 고시촌(인간계)의 번화함과는 거리가 먼 곳이다. 상권 형성이 제대로 안 된 대신 산세의 영향으로 자연 입지가 좋다. 생활의 불편함은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한다. 장을 보거나 문방구라도 가기 위해서는 산길을 걸어 대학동 쪽으로 빠져나와야만 한다.






아파트 뒤로 난 산책길을 걸어 대학동 인간계로



대학동은 세련되고 우아한 동네는 아니다. 대학동 골목은 아침부터 담배 연기로 매캐하다. 일단 눈을 뜨면 집 앞에 나와 담배부터 한 대 물고 보는 청춘들이 많다. 대학동은 오토바이의 천국이기도 하다. 동네 구성원은 배달 음식을 선호하는 젊은층과 1인 가구가 주를 이루는 데다가, 요식업이 배달의 민족, 요기요, 쿠팡 이츠, 띵동 등 외식 배달 서비스와 긴밀히 연결되기 시작한 이후로는 오토바이의 굉음이 골목골목을 가득 메우고 있다.


허나 인생 정거장이란 본시 그런 게 아니겠나. 얼마간의 불편함을 감수하고라도 목적지로 향하는 다음 차편을 묵묵히 기다려야만 하는 것. 역사에서 차 한잔 마실 수 있는 여유만은 애틋하다. 같은 목적지를 향하는 이와 정담을 나눌 수 있다면 운치가 조금 더해질 것이다. 기실 대학동이 그런 동네다. 얼마간의 무질서와 복잡함 뒤로 낭만과 정취, 무엇보다 소통의 정이 가득하다.





로컬 잡지를 만들어 대학동 이야기를 부지런히 실어나른다


최근 대학동에 새 바람이 불고 있다. 청년벤처기업 클러스터를 조성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고시 폐지와 함께 쇠퇴해가는 동네 상권을 살려내고자 하는 다양한 노력들이 시도중이다. 요즘 대학동의 여전한 듯 새로운 변화가 반갑다.



대학동, 이 유서 깊은 동네에 대한 서울시와 지자체의 투자가 지속적으로 이어져 왔다. 그러한 투자의 연장선상으로 2022년 대학동 생활상권 활성화 사업이 시작되었다. '별을 따는 청년마을'이라는 기치를 아래 활력을 잃어가는 골목상권을 살려내고자 사업팀이 꾸려졌다. 나는 생활상권사업의 소속 청년기자가 되어 대학동의 미담과 상점 스토리를 부지런히 실어나르는 중이다. 온라인 소식지에 동네글을 올리고 격월로 로컬 잡지 발행에 참여하면서 지역주민과 부지런히 소통을 시도하는 중이다. 단지 대학동을 향한 애틋함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다.


발품을 팔아 가가호호 대학동 상점을 드나들면서 건강한 마인드와 의식을 지닌 상점주들을 만났다. 돈벌이가 안 돼도 나름의 소신과 철학을 가지고 여일하게 가게를 꾸려나가는 그분들의 삶이 놀랍고 존경스러웠다. 수십 년(혹은 수년의) 세월, 대학동의 부침과 함께 해온 저마다의 인생 스토리에 자주 가슴이 떨렸다. 대학동 구성원간의 보이지 않는 촘촘한 관계망이 1인 가구와 수험과 도전의 시기를 보내는 숱한 청춘의 삶을 지탱하고 있음을 몸으로 알게 되었다.



시인 정지용이 <고향>에서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라고 노래했던가. 삶의 시름에서 놓여나고자 찾았던 나만의 공간, <카페 여기>는 이제 없다. 인생의 중한 가치에 눈을 열어주었던 꼭대기 집에서도 하산한 지 이미 오래다.



어떤 공간이 개인에게 특별했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그 시기가 유달리 인생에서 특별했다는 뜻이다. 나를 달래주었던 대학동 꼭대기집과 나의 카페, 그리고 몇몇 단골가게는 마음의 고향으로 각인되었다. 비바람에도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 돌판의 비문처럼 깊고도 진하게 아로새겨졌다. 삶이 고단하여 힘에 부칠 때면 언제라도 그날의 기억과 삶을 꺼내보며 기운을 낼 것이다. 마음이 높아져 삶의 본질을 놓치며 살다가 ‘아차’ 싶어지면 언제라도 대학동살이를 추억하며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대학동을 서성이며


지금도 크다만 가방을 메고 대학동 거리를 부지런히 오가는 젊음을 볼 때면 괜스레 가슴이 뛴다. 인간은 꿈과 도전에 언제나 가슴 한 켠을 내어주는 존재다. 오늘도 난 꿈으로 가는 길목이요, 인생 정거장인 대학동에 서있다. 그렇게 미련 많은 사람마냥 하릴없이 동네를 서성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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