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여행의 긴 여정, 그 마침표를 찍게 되는 곳은 언제고 집이다. 이보다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이 또 있을까? 종착지가 없다면 여행일 수 없다. 끊임없는 이주의 과정일 뿐.
숱한 도시를 여행하면서 제각각 멋스럽고 매력적인 숙소를 드나들었다. 잘 개켜진 하얀 수건과 꼭 필요한 만큼의 생활용품이 갖춰진 세면실, 생활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침실과 홀가분하게 비워진 방들. 미니멀 라이프를 소개하는 책에서나 봤음직한 쾌적한 공간들이다. 새 숙소에 들어설 때면 언제나 가슴이 설렜다.
사랑하는 가족을 위로하는 곳, 그곳이 우리 집
집으로 돌아온 우리를 맞아준 것은 현관문 앞 그득히 쌓인 신문들, 교체 시기가 되어 날아든 정수기 필터, 그리고 각종 우편물이다. 문을 열자마자 첫째 아이는 냉큼 신발을 벗고 베란다로 뛰어간다. 시들어가는 나팔꽃에 물을 함빡 준다. 아이는 그제서야 안도한다. 마치 위중 환자에게 긴급 수혈을 마치고 가슴을 쓸며 돌아서는 의사처럼.
우리 부부는 짐 푸는 걸 뒤로 하고 이 방 저 방을 오가며 물걸레질을 시작한다. 아무도 드나든 이 없었던 공간임에도 농도 짙은 먼지가 걸레에 새까맣게 묻어나는 게 언제나 신기하다. 집은 그간 주인의 손길을 잠자코 기다리고 있었던 걸까? 언제나처럼 따스한 돌봄과 보살핌의 손길을 그리워하면서. 집을 소제하며 문득 이런 궁금증이 들었다. 우리 집은 과연 1박에 얼마짜리 방일까?
먹고 마시며 쉼을 누리는 이 거룩한 일들이 기적처럼 매일 이루어지는 곳
날마다 바깥세상의 소식을 받아들이고, 위로받고 힘을 얻어 불안 없이 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곳. 날마다 집주인의 손을 거쳐 먹고, 마시며 쉼을 누리는 이 거룩한 일들이 기적처럼 매일 이루어지는 곳. 그곳이 다름 아닌 나의 집이다.
돌베개를 베고 잠이 든 야곱이 잠에서 깨어나 자신의 누운 자리가 특별한 곳임을 알았던 것처럼 화려한 도시를 돌고 돌아 이곳에 오니 비로소 보인다. 세상이 정한 기준으로 값어치를 매길 수 없는 이 집의 가치를, 그리고 더불어 이 집의 안주인으로, 집사로서 살아가는 내 소임의 지극히 성스러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