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부부와 3살, 6살 남자아이가 미국 캘리포니아 산호세에서 40일 동안 온전한 가족의 시간을 보낸 이야기입니다. 아이 둘과 갈 수 있는 곳을 가고 할 수 있는 것을 하며 지냈습니다. 그래도 우리의 매일은 반짝거렸습니다. 산호세의 날씨처럼 말이죠.
40일 여행의 짐을 당일 아침에 싼다는 게 누군가 에겐 의아할 수 있지만 내겐 달리 방법이 없었다. 두 달 여 남편 없는 주말은 평일보다 힘에 부쳤고, 월요일인 어제는 아이들을 보내고 이불 빨래와 집안 청소를 해야 했다. 오래 집을 비우니 냉장고 정리도 필요했다. 물론 느긋한 내 성격 탓도 있지만.
아이들을 등원시킨 뒤, 틈틈이 적어둔 여행 짐 목록을 들고 오전 내내 분주하게 움직였다. 혼자 남자아이 둘을 데리고 비행기에 타려면 짐은 가능한 줄여야 한다. 큰 트렁크 하나와 기내에서 필요한 것들을 챙긴 가방 하나와 둘째가 탈 유모차만 해도 이미 용량 초과다. 가방의 공간은 제한돼 있고, 아들 둘과 샌프란시스코까지 11시간 비행을 해야 하는 내 에너지도 정해져 있다.
꺼내놓은 짐은 많은데 아무리 봐도 다 들어갈 것 같지가 않다. 가서 살 수 있는 것은 빼고 꼭 필요한 물건들로만 우선순위를 정해 짐 싸기 테트리스를 시작한다. '햇볕은 뜨겁지만, 나무 그늘은 춥다'는 감이 안 오는 산호세 날씨 때문에 아이들 옷은 여름 것과 가을 것, 두 배가 됐다. 남편은 캠핑도 가야 하니 패딩도 챙기란다. 결국 미리 꺼내 둔 내 원피스와 샤랄라 한 스커트는 순위에서 밀려 다시 옷장으로 들어간다.
여행에서 예쁜 옷을 입고 멋진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은 나에게도 있다. 남편과 함께 가는 거면 캐리어 하나를 더 싸겠는데, 이 짐과 아이들을 챙길 건 오직 나뿐이니 나를 위해서라도 욕심을 내면 안 된다. ‘가서 사 입으면 되지’ 하고 합리화했지만 쇼핑을 왜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6세 남아와 어디로 튈지 모르는 3세 남아, 쇼핑하는 시간조차 아까운 남편을 데리고 내 옷을 사기 위해 쇼핑을 다닐 상황이 아니라는 걸 나는 그곳에 도착한 뒤에야 알게 되었다.
나도 멋 부리는 것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소풍날 예쁜 옷이 없으면 소풍이 가기 싫었고, 출근할 옷이 마땅치 않으면 옷을 고르다 지각을 하기도 했다. 그런 내가 예쁜 원피스와 짧은 치마를 입지 않기 시작한 건 아이를 낳은 뒤였다. 굽이 없는 신발과 운동화가 편했고, 두 번째 임신 뒤에는 핏플랍 하나로 여름을 나곤 했다.
고집하던 긴 머리는 말리기 힘들단 이유로 단발이 됐고, 가방은 아이 기저귀와 물티슈가 들어가는 큰 걸 들어야 했다. 그즈음 엄마들이 왜 백팩을 메는지 이해하게 됐다. 아이를 키우는 동안 내가 좋아했던 것이 하나둘씩 줄었다. 지금 싸고 있는 이 여행 가방의 짐처럼.
그렇게 하나 둘 빼고 보니 입고 싶은 옷 대신 편한 옷만 남았다. 반팔티셔츠와 긴팔 티셔츠, 카디건 하나, 후드 하나, 청바지 두 개, 반바지 하나, 여름과 가을 원피스 하나씩, 캠핑 때 입고 신을 경량 패딩과 운동화가 돌돌 말려 자리를 잡았다.
오후 3시, 곧 아이들이 돌아올 시간이고 우린 5시간 후면 산호세로 떠난다. 짐 정리와 청소를 마치고, 김치볶음밥을 만든다. 갑자기 웬 김치볶음밥이냐 싶지만 별 뜻은 없다. 40일 동안 비우는 집의 냉장고를 정리하다 한번 먹을 양의 김치가 남아있었을 뿐. 계란 프라이라도 올리면 좋으련만 이미 아침에 하나 남은 걸로 아이 반찬을 했다. 식사를 마지고 설거지를 끝내자 출국 전 모든 준비가 끝났다.
남편과 이렇게 오래 떨어져 있어 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렇게 오래 해외에 나가 있는 것도 내겐 처음이고, 아들 둘과 한 달 넘게 살러 가는 여행도 처음이며, 섬이 아닌 미국 땅을 밟아보는 것 또한 내겐 처음이다. 온통 처음으로 가득한 여행을 앞둔 긴장감과 함께 설렘이 밀려온다. 온전히 모든 시간을 함께할 산호세에서의 우리의 40일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