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는 벌써부터 들떠 있다. 미국 집에 초대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6세 아이에겐 집에 대한 로망이 생겼다. 다락과계단, 수영장이 그것이다. 계단이 있다는 건 이층 집이어야 한단 얘기다. 여기 아이들은 수영을 하고 싶으면 언제든 수영장으로 달려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아이는 부러워했다(물론 모든 미국 사람이 수영장 있는 집에 사는 건 아니지만). 마침 남편 지인의 초대로 우리는 첫 미국집을 경험하게 됐다.
남편이 산호세에서 S씨를 만난 건 정말 우연이었다. 출장 첫 출근날 점심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시며 산책을 하고 있는데 산책길에서 그를 만난 거다. "아니 네가 왜 여깄어?" 둘은 서로 깜짝 놀랐으리라. 그날 그 시간 그곳을 지나가지 않았다면 어쩌면 평생 다시 보지 못했을 인연이다.
S씨는 남편의 대학원 연구실 후배다. 각자 서로의 삶을 살다 보니 연락이 뜸했는데, 그런 그를 미국에서 그것도 출근 첫날 만날 줄이야! 그날 남편은 흥분한 목소리로 내게 전화를 했었다. S씨는 가족이 미국에 오면 꼭 자신의 집에서 식사를 하자며 우리를 초대했고 그렇게 오늘의 자리가 성사된 것이다.
그날 점심 약속도 있던 우리는 캠벨 가에 있었다.피자집 블루라인에서 화이트 트러플 오일을 곁들인 버섯피자를 점심으로 먹고 필즈 커피에서 모히또 라테를 한 잔 한 뒤 다시 차에 올랐다.
우리는 S씨 집에 3시까지 가기로 했다. 넉넉했던 시간은 선물을 너무 고심하다 다 써버리고 말았다. 급하게 마카롱을 사들고 나왔다. 마카롱이 미국에서 갖는 지위를 잘 모르는 우리로서는 이것 만으로는 손이 좀 가볍다 싶어 추가로 꽃도 한 다발 샀다.
S씨 가족은 산호세 근교의 아파트에 살고 있다. 한국의 아파트는 고층이 대부분이지만, 여기 아파트는 높아봐야 3~4층이다. 이곳엔 싱글하우스도 물론 많다. 하지만 모두 싱글하우스에 사는 건 아니다. 왜냐하면 비싸기 때문이다. 10억 원 대를 넘어가는 싱글하우스는 직장을 찾아 이민 온 사람이 쉽게 살 수 있는 집이 아니다.
그렇다고 아파트라고 싼 것도 아니다. 보통 가정의 경우 매달 300만 원 이상을 순전히 집을 위한 월세로 지출한다. 싱글하우스에 비해 가격 부담이 적고, 관리가 쉬우며 , 외국에서 온 이민자가 많아 아파트에 사는 사람 또한 많다. S씨의 집으로 향하는 길에서도 아파트 공사현장을 벌써 몇 개나 봤는지 모른다.
"미국집에 초대해줘서 고맙습니다." 아이의 마음과 내 마음이 같다. S씨의 아이들은 이미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우리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 나이로 9살인 여자아이와 6살 남자아이. 미국에 온지는 5년쯤 됐단다. 보기 좋게 그을린 피부가 미국 사는 한국인 같다.
우리 가족을 초대하기 위해 토요일 하루 종일 주방에서있었을 S씨의 아내에게도 정말 고마웠다. 그녀와는 아마 두 번째 만남일 거다. 그들의 결혼식에 참석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물놀이라고 하면 자다가도 일어날 우리 집 첫째 아이를 포함해 아이 셋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곧바로 수영장으로 달려갔다. 엄마 둘과 수영을 안 한다는 우리 집 둘째는 수영장 베드에 앉아 요즘 미국 엄마들 사이에서 핫다는 과자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한참수영을 즐기고 있던 또 다른 한국 엄마도 만났다. 미국에 온 지 2년이 좀 넘었다는 그녀는 아이가 하루 종일 엄마와 있는데 한국어와 영어 모두 서툴다며 한국에서 인기 있는 아이 전집에 대해 물었다. 내가 미국에서 한국 전집 이야기를 하게 될 줄이야!
S씨의 아내가 미국에 와서 살게 된 이야기를 듣는데 왠지 내 마음이 다 아팠다. 운전도 못하는 그녀가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돌도 안 지난 아이와 아직 프리스쿨에 가지 않는 4살짜리 아이를 데리고 몇 개월을 집에만 있었다는 이야기. 그녀가 나중에 운전을 하고 간 곳이래봐야 스타벅스 정도 였다고.
또 다른 한국 엄마가 손에 아이스크림을 한가득 들고 왔다. 재밌는 건 미국 사는 한국 아이는 한국 아이스크림인 폴라포를, 한국에사는 우리 집 아이들은 모두 미국 아이스크림을 집었다는 것이다. 영어, 한국어, 중국어가 함께 들려오는 진기한 풍경이 오후 내내 수영장에서 계속 됐다.
신나게 수영을 마치고 돌아와 함께 한 저녁식사. S씨와 남편은 수영장에 있는 그릴에서 고기를 구워왔다. 우리 한국 집에도 없는 총각김치와 깻잎장아찌를 보니 여기가 한국인가 미국인가 싶다. 그녀는 미국에 있으니 한국음식을 더 찾게 된다고 했다. 그래서 코스트코에서 총각김치를 봤을 때 '이건 사야 해'하며 얼른 집어왔단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오랜만에 만난 자리에서 우리는 그동안 서로 살아온 이야기를 함께 했다. 그들의 미국 생활에 궁금한 게 많았던 우리 부부는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어떻게 미국에 오게 됐는지, 미국 생활은 어떤지 등.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니 교육 이야기가 빠지지 않았는데 이곳 미국에 살고 있는 한국 엄마들이 하는 이야기는 내게 꽤 신선하게 들렸다. 바로 한국 엄마, 중국 엄마, 인도 엄마에 관한 이야기이다. 재미있는 건 내가 여기서 만난 모든 한국 엄마들이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