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호세에서 뭐가 가장 좋았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연코 날씨였다. 처음 며칠은 매일 날씨에 감탄하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곤 했다. 매일 이렇게 완벽한 날씨가 가능하다니! 이곳의 여름은 그야말로 천상의 날씨다.
짙은 파란색의 하늘 아래 깨끗한 공기가 상쾌하다. 눈부신 햇빛 사이로 시원하게 부는 바람은 절로 큰 숨을 들이쉬게 한다. 매일 아침 미세먼지 지수를 확인하던 한국에서의 생활이 억울하기까지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 년에 열 번도 볼 수 없는 기막히게 좋은 날씨가 이곳에선 일상이었다.
큰 창을 옆에 둔 침대에서 아침을 맞이하며 제일 신기했던 건 새벽에 짙게 내려앉은 구름이 아침만 되면 점점 물러나 결국 푸른 하늘만 남기는 것이었다. 그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온종일 계속된다. 날은 덥지만 습도는 낮아 웬만해선 땀도 나지 않는다.
나는 매일 그런 하늘을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우리가 지낸 40일 내내 그랬다. 딱 하루 비가 오긴 했지만 그 비도 청량함을 남기고 금세 그쳤다. 물론 구름 있는 날씨도 몇 있긴 했다.
처음 남편이 산호세 날씨를 설명하며 '햇볕은 뜨겁고, 그늘은 춥다'고 말할 때는 그게 뭔 말이야 싶었다. '뜨거운데 춥다?'는 튀긴 아이스크림 같은 역설적인 날씨를 나는 한국에서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림 같은 파란 하늘이 좋아 가는 곳 마다 하늘 사진을 찍었다.
이곳에는 '웨더 택스(Weather tax)'라는 말이 있다. 날씨 세금? 이게 뭔 말인가 싶었는데 이곳에서 하루를 꼬박 보내고서야 그 뜻을 알아차리게 됐다. 이 이야기를 하려면 이곳의 물가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머문 산호세는 실리콘밸리 도시 중 하나로 미국에서도 생활비가 비싸기로 유명하다. 집값뿐 아니라 물가도 상상 이상이다. 물건을 살 때는 따로 9%의 세금도 붙는다. 많은 지출을 위해서는 수입도 커야 하는 법. 미국 주택도시개발부(HUD)의 지난해 발표에 따르면 실리콘밸리 4인 가구의 저소득층 기준선은 11만 7500달러, 한화로 약 1억 3000만 원에 달한다. 1억 3000만 원 이하로 벌면 이곳에선 저소득층이라는 얘기다.
이곳에서 지내는 어느 날, 한국의 친구로부터 카톡을 받았다. 지금 방송에 실리콘밸리의 1억 원 연봉자가 집이 없어 자동차에서 생활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정말 그렇냐는 질문이었다. 아마 사실일 거다. 연봉 1억 원에서 소득세와 높은 생활비를 제하면 300만 원이 훌쩍 넘는 집다운 집의 월세는 불가능하지 싶다.
이런 높은 물가를 이곳 사람은 좋은 날씨를 즐기기 위해 내는 세금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웨더 택스'라는 말은 여기에서 나왔다. 이만하면 여기 날씨에 대한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가 없겠다. 좋은 날씨와 좋은 공기를 즐기는 것도 결국 소득의 문제구나 싶어 한편으로 씁쓸하기도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옷을 갈아있던 나는 사흘쯤 돼서야 이곳의 날씨를 확실히 파악했다. 그리고 '햇볕은 뜨겁고, 그늘은 춥다'는 남편의 설명도 이해하게 됐다. 한낮은 민소매와 짧은 반바지면 족하다. 시원한 나무 그늘과 저녁을 위해서는 긴소매를 여벌로 항상 챙겨야 한다. 상황에 따라 옷을 벗고 입는 게 이곳의 날씨에 적합한 옷차림이다. 물론 이곳의 많은 사람들은 하루 종일 민소매 차림이긴 하지만.
내가 아이들과 이곳에 도착한 것은 우리나라에서 여름을 거의 다 보낸 때여서 이곳도 곧 가을이 올 줄 알았다. 그래서 가을 옷을 한참 챙겼다. 이곳 날씨에 대한 나의 오해로 이 옷들은 미국 구경 한 번 못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대신 이곳의 겨울은 분위기가 좀 다르다고 한다. 우리나라처럼 춥지는 않지만 비가 자주 온다. 그래서 기분이 날씨 영향을 좀 받는단다. 한국에서는 안 그랬는데 이곳에서는 겨울마다 우울해진다는 지인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