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산호세에서 만난 한국 엄마들과의 대화에서 나온 이야기는 신선했다. 교육열 높기로 유명한 한국 엄마들이지만하나만 낳아 올인하는 중국 엄마들은 따라갈 수가 없고, 그런 중국 엄마들도 따라잡을 수 없는 게 바로 인도 엄마라는 내용이었다.
실리콘밸리는 IT기업이 많다는 지역 특성상 다양한 인종이 산다. 흥미로운 건 아시아인이 많은 학교가 다른 학교에 비해 학업성취도가 높으며 특히 인도 아이들은 특출 나게 공부를 잘해서 학교의 전체 평균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한국엄마들은 그런 지역을 소위' 학군이 좋다'라고 얘기했는데 학군이 좋은 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해 집값도 비싸다고 했다. 내가 미국에서 '학군'이라는 단어를 듣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물론 팔로 알토(Palo Alto)처럼 전통적으로 백인만 사는 지역도 있지만 말이다.
이민 5년 차 S씨의 아내는 아이의 초등학교 부모 모임에 갔다가 깜짝 놀라 돌아온 이야기를 해줬다. 인도 엄마들이 쏟아내는 질문에 한번 놀라고, 지금 숙제가 너무 적으니 더 내달라는 항의에 두 번 놀랐다고 한다. 결국 학교에서는 '숙제'와 '더 해도 되는 숙제'를 내주고 있다고 한다. 순전히 인도 아이들을 위해서 말이다.
S씨도 덧붙였다. 아파트 수영장에서도 인도인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과는 다르다고했다. 보통 아빠의 일과가 끝나고 함께 나오는데 인도 아이는 아빠가 정해준 수영 할당을 다 채운 뒤에야 아빠와 놀 수 있었단다. 물론 특정 가정의 이야기일 수 있지만, 어렴풋이 인도 가정의 교육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인도인의 경우 한국이나 중국과는 다르게 이민을 올 때 조부모가 함께 오는 가정이 많다. 이런 가정환경 때문인지 부모뿐 아니라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아이의 교육에 집중하는 분위기란다. 부모와 조부모뿐 아니라 아이도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과 중국 아이들은 사춘기가 오면 성적이 떨어지기도 하는데, 인도의 가정 분위기는 순종적이어서 그런 것도 없다고 했다.
이민 10년 차인 Y씨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아시아인이 거의 없는 학교에 다닌다는 그녀의 딸이 어느 날 엄마에게 물었다. "나는 학교에서 다 잘하는데 왜 더 잘해야 해?"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너는 네 학교의 친구들이 아닌 아시아인과 경쟁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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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학교가 소수인종 보호 정책의 일환으로 일종의 '인종 쿼터'를 두고 있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소수인종 보호 정책을 쓰지 않는 칼텍대학교의 아시아인 학생의 비율은 40%로 점점 높아지는추세인데 반해, 소수인종 보호 정책을 쓰는 하버드대학의 아시아인 비율은 20% 대로 몇 년째 변함이 없다. 아시아인은 다른 인종에 비해 훨씬 공부를 잘해야 하버드에 갈 수 있다는 얘기다. 하버드는 현재 이 문제로 한 민간단체와 5년째 소송을 벌이고 있다.
나는 Y씨에게 딸이 몇 개의 학원을 다니냐고 물었다. 그녀는 작문, 수학, 과학, 중국어, 바이올린 등등을 얘기하며 대여섯개쯤 된다고 했다. 모두 그런 건 아니지만 미국에 사는 많은 한국 아이들이 그렇다고 했다. 자신은 다른 교육열 높은 한국 엄마와 비교해 많이 시키는 것도 아니라고 덧붙였다. 분명한 건 여기 입시 경쟁 또한 한국 못지 않게 할 것이 많으며, 오히려 비교과인 예체능까지 신경써야 하는 건 한국과 다른 점이라고 했다.
중국인 L씨 역시 이런 한국 엄마들의 말에 동의했다. 그러면서 그 이유를 이렇게 분석했다. 한국인과 일본인은 미국에 이민을 왔다가 잘 안되면 다시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면 그만이다. 하지만 중국인과 인도인은 다르다. 절대 다시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녀는 그런 동기부여가 그들을 열심히 하게 만드는게 아닐까하고 짐작했다. 퇴로가 없는 중국인, 인도인은 애초에 한국인, 일본인과는 마음가짐부터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곳에서 회사를 다니는 사람들은 인도인이 명석할 뿐 아니라 성실하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Y씨와 함께 회사를 다니던 동료는 4 자릿수 곱셈을 암산으로 하더란다. 어떻게 하는 거냐고 물었더니 할아버지 때부터 내려오는 계산법이 있단다. 이런 사람이 열심히까지 하는데 이걸 어찌 따라가겠는가.
그 얘길 듣고 보니 놀이터에서 신나게 뛰어노는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잔디밭에 앉아 옆에 책을 쌓아두고 한 시간이 넘도록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던 인도 엄마가 떠올랐다. 도서관에서도 돌아다니며 책을 보는 아이들과 다르게 아이를 옆에 앉혀두고 거의 두 시간 동안 공부를 봐주던 인도 엄마가 생각났다.
인도 엄마와 아이는 이 초록빛 나무 그늘에서 오래도록 책을 보고 있었다.
놀이터에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면서 미국으로 이민을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한국의 공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아이들의 교육적인 부분이 더 컸다. 어마 무시한 한국의 사교육 시장에서 앞서가며 공부시킬 생각도 없지만 그렇다고 안 시키며 느긋할 자신도 없었다. 결국 나는 적당히 시키며 불안해하겠지. 적어도 이곳에서는 아이들이 잔디밭에서 뛰어놀며 행복할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 그건 아무것도 모르는 나의 환상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곳에서 살고 있는 많은 한국 엄마들을 통해서 말이다. 공부는 아이가 하는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엄마가 시키는 만큼 아이의 성적이 따라와 준다니 불안한 마음이 드는건 사실이다.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 또한 잘 알면서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