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캠핑 안 해보셨으면 힘드실 거예요. 추운 것보다 먹고 씻고 자는 걸 걱정하셔야 해요.
남편은 우리가 미국에 도착한 첫 주 주말에 요세미티 국립공원(Yosemite National Park) 캠핑을 예약해놨다. 추워지면 못 가니 가능한 한 빨리 가야 한다며 겨울 옷도 단단히 챙겨 오라고 당부했다. 한국에서도 안 해 본 캠핑을 아이 둘을 데리고 미국에서 심지어 추울 수도 있다는 요세미티 국립공원에서 한다고?
걱정이 앞선 게 사실이다. 요세미티를 이미 다녀온 미국 지인들은 춥기도 하고 아이 둘 데리고 캠핑을 하기엔 어려움이 많을거라며 권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지금 아니면 내가 언제 요세미티에서 캠핑을 해보겠어! 인생에 다시없을 시간이라 생각하니 안 할 수도 없었다.
요세미티 국립공원은 1890년 미국에서 세 번째로 지정된 국립공원으로 1984년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으로 등재됐다. 면적은 3,000㎢로 서울의 3배 달한다. 등산가들에게 유명한 세계적인 암벽등반지 하프돔(Half Dome)이 있는 곳으로, 이는 등산복 브랜드 노스페이스 로고에 영감을 줬다.
피할 수 없으면 대비를 하는 수밖에. 일단 미국 엄마들이 많다는 맘 카페 미국방에 들어가 조언을 구하기로 했다.
‘8월 말 아이 둘과 요세미티 캠핑 어떨까요? 많이 추운 가요?’
친절하고 고마운 분들의 댓글이 달렸다. 옷을 잘 챙겨가면 그렇게 춥지는 않을 거란다. 그런데 문제는 추위가 아니란다. 미국에서 캠핑을 안 해봤으면 힘들 거라고 했다. 미국 국립공원의 캠핑 사이트는 한국의 캠핑장과는 달라 씻고 먹고 자는 게 많이 불편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우리 가족은 한국에서도 캠핑을 해본 적이 없다. 두어 번 지인이 캠핑하는 곳에 가서 놀다 온 적은 있으나 절대 자고 오진 않았다. 씻고 자는 게 불편해서였다. 남편 역시 집 놔두고 왜 밖에서 자냐고 했던 사람이다. 그런 우리가 요세미티 캠핑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일단 계획은 이렇다. 취사가 가능한 와오나 캠프그라운드(Wawona Camp ground)에서 텐트를 치고 1박을 한 뒤 다음날 케빈이 있는 커리빌리지(Curry Village)로 이동해 1박을 더 한다. 와오나에서는 취사가 가능하니 캠핑을 충분히 즐기고, 커리빌리지 케빈은 취사 및 음식 섭취가 불가능한 대신 편리함을 취하자.
우리는 일요일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요세미티 국립공원까지는 4시간 반이 걸린다. 가는 길에 아침도 먹어야 하고, 장도 봐야 하고, 필요한 물건도 사야 했다. 아이들 때문에 가다 쉬다 하며 캠프 사이트에 도착하니 이미 늦은 오후가 다 됐다.
캠핑 사이트 옆으로 흐르는 계곡
우리가 하루를 지낸 캠프 사이트와 텐트. 요세미티 국립공원은 곰이 나올 수 있으니 음식물은 항상 보관하는 곳에 넣어둬야 한다.
높은 나무숲 사이로 곳곳에 캠프 사이트가 있고 사람들은 그곳에서 느긋하게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눈만 돌리면 다람쥐가 돌아다니고, 곰이 있으니 조심하라는 안내문도 적혀 있다. 차에서 내린 아이들은 신이 났다. 뛰어놀며 나무와 흙을 갖고 놀 수 있으니 어떤 놀이터가 부러우랴.
문제는 흙이 까맣고 고와서 아이들은 도착 10분 만에 거지꼴이 다 됐다는 거다. 몇 번은 따라다니며 계속 손을 닦아줘 보았지만 이내 포기했다. 내일 아침까지 이 짓을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흙 좀 먹으면 또 어떠한가(혹시라도 이곳에 캠핑을 오게 된다면 꼭 버려도 되는 옷을 입고 오기 오시길).
도시 아파트에서만 살던 아이들에게 이곳은 자연이 주는 선물 같았다.
사람들이 왜 추위가 문제가 아니라고 했는지는 곧 알게 됐다. 일단 물이 쓰기 불편하니 씻는 건 아예 포기해야 한다. 음식을 해먹은 뒤 설거지도 못한다. 하지만 반대로 이것만 포기하면 이곳은 캠핑을 하기에 꽤 근사했다. 조용한 숲이 보낸 비밀 초대장을 받은 기분이다. 자연의 한 곳을 빌려 자리를 잡고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을 하며 자연과 동화되는 느낌이랄까? 오로지 캠핑을 위해 캠핑장을 만들어 놓은 내가 가본 한국 캠핑장과는 다른 기분이었다.
이날 저녁으로 구워 먹은 고기 또한 실로 예술이었다. 남편으로 말할 것 같으면 고기 굽는 일은 웬만해선 남에게 맡기지 않는 나름 ‘고기 굽기 부심’ 있는 그런 사람이다. 일단 홀푸드마켓(이 훌륭한 마켓에 대해서는 차차 얘기하기로 하자!)에서 사 온 고기가 훌륭했고, 남편이 공을 들여 충분히 잘 구웠으며, 점심을 먹지 못한 우리는 매우 배가 고팠다.
첫째가 그렇게 많은 고기를 맛있게 먹은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우리는 그 불에 닭꼬치, 퀘사디아, 라면을 올려가며 조용히 이야기를 나눴다. 구운 마시멜로는 겉이 바삭하지만 속은 구름처럼 부드럽다는 것도 이날 처음 알게 됐다.
우려와 달리 긴소매 티셔츠와 점퍼만으로도 춥지 않았다. 아이는 밤하늘 별을 보며 말했다. "이렇게 많은 별을 보는 건 정말 처음이야." 지인이 통째로 빌려준 완벽한 캠핑 장비와 담요 덕분에 이날 밤 우리는 편하게 잠들 수 있었다. 우리 가족의 첫 번째 캠핑이 요세미티에서 라니 새삼 믿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