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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정 Oct 31. 2019

요세미티의 숨은 아지트,  데블스 엘보우

요세미티 국립공원에서 첫 캠핑을 하는 호사


첫 캠핑은 이만하면 성공적이다. 하루 동안의 꿈같던 캠핑을 정리하고 우리는 커리빌리지로 향한다. 이제 본격적으로 요세미티를 둘러볼 참이다. 구불구불 휘어진 길 옆으로 보이는 풍경이 그야말로 장관이다. 광활한 산등성이를 내려다보며 미국은 스케일이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대표적인 관광지로는 긴 터널을 지나고 만나는 그림 같은 장관의 터널 뷰(Tunnel View)와 신부의 면사포를 닮았다는 브라이덜 베일 폭포(Bridal veil Fall), 암벽등반지 하프 돔(Half Dome) 등이 있다. 우리는 곳곳에 멈춰 열심히 기념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우리에게 진짜 요세미티를 느낄 수 있게 한 곳은 이런 유명한 포인트가 아니었다.


차를 타고 긴 터널을 지나면 그 유명한 '터널뷰'가 나온다. 차를 세워두고 풍경을 감상할만 하다.

우리는 주변을 산책할 요량으로 차를 타고 나왔다가 이곳을 발견했다. 커리빌리지 케빈에 짐을 풀고 남들 다 들르는 식당가 피자집에서 식사를 한 뒤였다. 가벼운 차림에 배낭을 메고 트래킹을 나서는 사람이 많았지만 3살, 6살 아이를 데리고 걷는 건 동네 슈퍼마켓에 갈 때도 한참 걸리는 일이라 과감하게 하지 않기로 했다.


북쪽 길(Northside Drive)을 따라 내려가는데 나무 사이로 강에서 수영을 즐기는 사람들이 보였다. 일단 차에서 내렸다. 수영복으로 갈아입은 뒤 졸려하는 둘째 아이를 둘러업고 그곳으로 향했다. 나무 몇 개를 지나 그곳 강에 발을 들이니 환상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뭐랄까, 아는 사람만 아는 비밀 아지트 같다고 할까. 그 풍경은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A river runs through)’의 포스터가 생각나게 했다.


수영복 차림의 사람들은 나름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햇볕을 즐기는 연인이 있었고, 작은 캔버스에 풍경을 그리는 할아버지도 있었고, 차가운 물속에서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젊은이들도 있었다. 분명한 건 그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여유로웠다는 것이다.


데블스 엘보우. 이 그림 같은 풍경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우리는 그 풍경 속에 들어가기로 했다. 첫째는 발을 담그기도 쉽지 않을 만큼 차가운 물에 금방 몸을 담가버렸다. 마침 둘째도 잠이 들어 우리 부부는 그곳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었다. 이곳의 이름은 데블스 엘보우(Devil’s Elbow). 국립공원 안내 책자에도 없는 이다(이름은 이곳을 나올 때 팻말을 보고서야 알게 됐다).


그 모습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나는 강(Merced River)의 물이 흘러 들어오는 쪽을 한 번, 흘러내려가는 쪽을 한 번 이렇게 번갈아가며 한참을 두리번거렸더랬다.


이곳에서 두 시간 넘게 수영하며 논 아이는 다음 날도 강에 물놀이를 하러 가자고 했다. 우리도 반대할 이유가 없다. 아이는 모래 놀이를 하다 물놀이를 하고 또 아빠와 함께 놀다 엄마를 찾으며 요세미티를 몸으로 즐기고 있었다. 아마 아이는 요세미티 국립공원을 강으로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진 수십 장 찍어도 눈에 보이는 멋짐이 담기지 않는다. 카메라를 탓해야 하나, 내 부족한 사진 기술을 탓해야 하나. 대신 나는 그곳을 오래도록 바라보며 눈과 가슴에 요세미티를 담기로 했다. 펜에 이름을 각인하듯, 그 풍경을 마음에 각인했다.


이곳은 밤도 근사하다. 극장(Theater)에서는 요세미티에 대한 세미나도 열렸다.

요세미티의 모든 풍경은 그림같이 멋있었다. 하지만 그 유명한 포인트들을 제치고 데블스 엘보우가 우리에게 최고로 남은 건 그저 풍경으로 남은 다른 곳들과 달리 이곳에서 우리는 풍경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프 돔과 폭포가 아무리 멋있던들 우리가 수영했던 강에서의 행복함에 비할 수 있으랴.


(그래도 그 유명한 하프 돔 사진 하나 없는 건 너무했다. 사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여행에서 사진은 어느 정도 포기하는 게 좋다. 그럴듯한 풍경 사진을 찍을 여유도, 제대로 된 가족사진을 찍기 위한 협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언젠가 아이들이 큰 뒤 다시 이곳에 오게 된다면 함께 트래킹을 하고 자전거도 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그때의 요세미티는 나에게 또 다른 풍경으로 다가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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