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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moo Aug 16. 2022

꼬마가 제삿날만 기다린 이유

기쁘다 쪼꼬렛 할아버지 오셨네

늘 11시가 고비였다. 10살 꼬마에겐 잠들고도 남을 시간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날만큼은 참아야 했다. '쪼꼬렛 할아버지의 초콜릿'을 놓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작은할아버지는 제삿날이면 늘 초콜릿을 사 오셨다. 우린 그를 '쪼꼬렛 할아버지'라 부르며 오매불망 기다렸다. 초인종이 울리면 언제 졸았냐는 듯 발딱 일어나 버선발로 할아버지를(초콜릿을) 반겼다. 인사는 건성이고, 양복 안주머니만 쳐다보는 눈동자 여섯 개에 할아버지는 '이놈 녀석들' 하시며 신발도 못 벗은 채 현관문에서 초콜릿을 나눠주셨다.

Photo by Jessica Loaiza on Unsplash

가나 초콜릿부터 아몬드 초코볼까지, 매번 달라지는 라인업에 '오늘은 어떤 걸 사 오실까?' 기대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초콜릿 대신 종합과자 선물세트가 등장하는 날도 있었다. 어린이들의 워너비 아이템, 곱게 묶인 리본을 풀고 박스를 열면 오만가지 과자가 펼쳐지는 어린이 선물의 정수! 과자를 쭉 늘어놓고 뭘 먼저 먹어볼까 고민하는 그 순간만큼은 세계를, 아니 우주를 가진 아이였다.


그땐 초콜릿이, 과자가 눈에 보이는 전부였다. 그런데 간식 없이도 새벽까지 깨어 있을 수 있는 나이가 되고 보니, 그땐 못봤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인다. '요놈들, 오늘도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겠구나.' 하며 초콜릿을 고르는 바쁜 손길, 현관문 너머로 들려오는 환호 소리에 피어났을 입가의 웃음, 과자에 몰두한 손주들을 보며 지으셨을 흐뭇한 미소... '그때 아마 그러셨겠지' 하는 모습들을 떠올리다 보면 초콜릿 하나에 세상을 다 가진 듯했던 그때보다 더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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