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19금 아님!!!
그린 망고(Green Mango)-2부
“이거 뭔지 알아?” 하며 주스 잔을 보인다.
옅은 녹색의 셰이크가 유리잔에 눈물 같은 물방울을 매달고 카오리의 손에 들려 있었다.
-나 : “그린 망고 셰이크네”
-카오리 : “내가 만들었어, 한 잔 줄까?”
-나 : “고마워”
이럴 땐 거절하기도 어색하다.
나는 엉거주춤 서서 카오리가 방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그녀가 앉았던
옆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카오리는 예쁜 쟁반에 ‘그린 망고 셰이크’를 담아 왔다.
-카오리 : 우리 마당에 망고 나무 있는 거 알아?
-나 : 아, 저게 망고나무였구나..
-카오리 : 동네 아이들이 몰래 따다가 들켜서 놓고 도망갔어, 이게 그거야.
-나 :... 맛있다..
나는 카오리 옆에 앉아 망고나무를 바라보는 척했지만 허벅지가 드러난 카오리의
반바지 때문에 자꾸 딴생각이 났다. 몇 마디 잡담을 더 나누며 잔을 비우고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나는 내 방으로 들어갔다.
며칠 후, 밤이 깊었는데 두런두런 사람 소리가 밖에서 들렸다.
카오리의 방 앞인 것 같았다. 창문 커튼을 슬쩍 걷어서 그쪽을 보니
웬 여자들 4명이 카오리의 방 앞에 앉아서 뭔가를 수군거리고 있었다.
그 사이에 카잔의 얼굴이 보인다.
나는 창문을 닫고 에어컨을 켰다. 2시간쯤 지난 후 다시 내다보니
그때까지 그들은 심각한 표정로 자리를 뜨지 않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오랜만에 늦잠을 자고 방문을 여니 카잔이 마당에서 빨래를 하고 있었다.
-나 : 어제 그 사람들 누구야?
-카잔 : 제 누나들이에요. 시끄러웠죠. 죄송해요.
-나 : 누나들이 이 동네에 사나 봐?
-카잔 : 다들 근처에 살아요.
나는 기왕 말이 터진 김에 궁금한 일들을 물어봤다.
-나 : 카오리하고는 어떻게 만났어?
-카잔 : 2년 전에 제가 일하던 호텔에 손님으로 왔었어요. 친구들하고 함께 여행을
왔었는데 그때 알게 됐어요. 그런데 일본으로 돌아 간 후 며칠 뒤에 카오리가
혼자서 다시 저를 보러 온 거예요. 그때부터 친해졌어요. 그 뒤로 카오리는 한
달에 한 번 꼴로 세부에 왔고 결국 작년에는 이쪽으로 완전히 옮겨서 세부에
직장까지 구했어요. 행복하긴 한데.....(하며 말을 흐린다)
필리핀은 여자가 가장으로 가정을 꾸리는 경우가 많다. 남자들은 일자리가 부족하고
일을 한다고 해도 임금이 적고 근무 환경이 안 좋아서 한 군데서 길게 일하기가 어렵다.
여자들은 허드렛일이나 유통업, 서비스업 등에 일자리가 상대적으로 많지만 남자들은
이런 일도 구하기 힘드니 더 돈벌이가 힘든 것이다.
이렇다 보니 여자들이 나가서 돈을 벌고 남자들은 애들을 돌보며 집안일을 하거나 빈둥거리는
가정이 적지 않다. 집주인 말에 의하면 특히 우리 동네에는 그런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카잔의 누나들은 모두 이 동네에 살고 그런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 같았다.
며칠 뒤 또 바깥이 소란스러워서 내다보니 카잔의 누나라는 사람들이 또다시 모여서
수런수런 떠들고 있었다. 가족회의를 하는 모양새다. 그런데 오늘은 카오리도 거기 보인다.
내가 창문 안에서 들어보니 필리핀 말로 하고 있어 들을 수가 없었다.
"카오리는 저기서 뭐 하고 있는 거지? 못 알아들을 텐데?" 이런 혼잣말을 하며 커튼을 닫았다.
잠시 후 카오리는 방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고 그 뒤로도 한참 동안을 카잔과 그의 누나들은
내 방 앞에서 떠들다가 밤이 늦어서야 사라졌다.
그로부터 일주일쯤 지나서였다. 마침 “J파크”에 일이 있어 들렀더니 카오리의 안내 데스크에
다른 일본인 아가씨가 앉아 있었다. 카오리 어디 있냐고 물어보니 카오리는 그만뒀다고 했다.
언제 그만뒀냐고 물었더니, "왜 그러세요? 카오리가 무슨 실수라도 했나요?"라며,
꼬치꼬치 캐묻기에 그냥 아무 일 아니라고 하고는 그 자리를 떴다.
“무슨 일이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오니 마당에 테이블을 놓고
집주인이 혼자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날 기다리고 있는 모양새였다. 그가 날 보더니
아무 말 없이 맥주를 내민다. 옆자리에 앉아서 맥주를 따는데 그가 뭔가를 준다.
“카오리가 이거 전해 주라고 했어” 하며 검은 비닐봉지에 쌓인 뭔가를 넘겨준다.
안을 들여다보니 그린 망고 다섯 개가 들어 있었다.
-나 : 카오리 아직 안 들어왔나?
-집주인 : 카오리 일본 갔는데 몰랐어?
-나 : 어? 언제?
-집주인 : 어제 갔어.
-나 : 그래? 언제 돌아온데?
-집주인 : 글쎄, 안 올 거 같은데.
-나 :....
-집주인 : 지금은 카잔 혼자 있는데, 다음 주에 계약 끝나면 나간다네.
한국사람 중에 들어올 사람 있으면 소개 좀 해줘..
-나 : 카오리 왜 갔는지 알아?
-집주인 : (물끄러미 날 쳐다본다) 왜 알고 싶어?
-나 : 아니, 그냥.
-집주인 : 내가 어떻게 알겠어.
-나 : 나는 알 거 같은데..
-집주인 : 필리핀 사람 다됐네.. ㅋㅋㅋ
그가 묘한 미소를 지으면서 날 바라본다.
(3부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