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투말록 폭포(Tumalog Fall) 그리고...
[세부(Cebu, Philippines) 남부 투어]
#15, 투말록 폭포(Tumalog Fall) 그리고...
아침에 눈을 떴다.
창밖으로 동네 아이들이 물놀이하는 소리가 들린다.
바닷가의 아침 풍경이 너무도 아름답다.
아래층 수영장 계단에서 핸드폰으로 아이들 사진을 찍었다.
카메라를 가져왔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어젯밤 누워서 내일은 어떻게 할까 생각을 했었다.
삶이 행복하지 않다고 해서 일상을 벗어나 살 수는 없다.
돌아가기 싫다고 현실을 외면할 수도 없다.
삶과 인연을 끊을 것이 아니라면 돌아가야 할 것이다.
원래 있던 자리로......
아침에 차를 출발시키며 '투말록 폭포(Tumalog Falls)'를 들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투말록 폭포”는 '오슬롭 고래상어 투어'의 중요한 코스 중 하나다.
세부로부터 먼 길을 와서 고래상어만 달랑 보고 가기가 아쉬우니 여행사에서
근처에 괜찮은 관광지를 하나 더 발굴했는데 그곳이 “투말록 폭포”다.
오늘은 "투말록 폭포"를 좀 여유 있게 다녀와 보려고 한다.
관광객들과 함께 다니면 시간에 쫓겨 제대로 폭포 놀이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부에서 당일로 오슬롭 투어를 하게 되면 투말록 폭포에 오래 머물 수가 없다.
시간이 촉박해서 폭포에서 20분도 머물기 힘들다. 가까운 곳에 있는 '수밀론 섬'을
못 들르는 것도 돌아가는 시간이 너무 늦어지기 때문이다.
새벽 3~4시에 세부를 출발해도 오슬롭에서 고래상어와 수영을 하고 “투말록 폭포”에
도착할 즈음이면 시간이 꽤 지나게 된다. 빨리 세부로 돌아가야 하는 가이드 입장에서
"투말록 폭포"에서 시간을 지체하면 다음 일정이 무척 힘들어진다. 그래서 잠깐 들러
사진만 찍고 가는 것이 '투말록 폭포'에서의 일정이다. 그렇다 보니 관광객 중에는 이곳
일정을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역시 늘 아쉬웠다. 그렇게 잠깐 들르고 가기에는
이곳이 너무 좋기 때문이다.
투말록 폭포는 깊은 산중에 있어서 가까이 가기가 쉽지가 않다.
웬만한 차로는 주차장까지 가는 것도 힘들다.
배낭 여행객들은 산 입구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올라가기도 하는데
처음 오는 사람들은 투말록으로 올라가는 오토바이를 찾는 것도 쉽지 않다.
가이드가 없이 가면 발품을 많이 팔아도 바가지 쓰기 딱 좋다.
산 중턱의 주차장에 도착하면 다시 계곡 아래로 내려가는 번호표가 달린 오토바이를 타야 한다.
그걸 타면 1분이면 폭포 입구 계곡에 도착한다.
오토바이를 타고 내려가는 길은 짧은 거리지만 꽤나 스릴이 넘친다.
솔직히 많이 위험하지만 스릴 있는 일은 그만큼 위험할 수밖에 없다.
주차장에서 폭포 입구까지는 걸어가기 먼 거리는 아니다.
그래서 현지인들이나 서양 관광객들은 걸어서 이동하는 사람들도 있다.
투말록 폭포는 보통 폭포와는 좀 다르게 생겼다.
물줄기가 뭉쳐서 일자로 내리꽂는 것이 아니라 이슬비 내리듯이 물이 흩어져서 떨어진다.
수량이 많을 때는 굵은 물줄기가 형성되기도 하지만 폭포가 높고 넓다 보니 물이 바닥에
도착할 쯤에는 빗물 같이 된다.
이슬비 내리듯 떨어지는 폭포수에 물안개가 끼면 투말록 폭포는 정말 멋진 장면을 보여준다.
하지만 수량이 부족한 계절에는 물이 마르기도 하는데 이럴 때는 그냥 암벽만 덩그러니 보일 때도 있다.
수량이 없을 때 간 사람들은 당연히 “이딴 걸 보러 여길 왔냐?”라고 불만을 터뜨리기도 하는데
그런 일은 잘 없다. 나도 두 번 정도 물이 마른 폭포를 본 적이 있는데, 그때도 손님들이 그다지
싫어하지는 않았다. 수량이 적으면 적은 대로 운치가 있기 때문이다.
이곳은 깊은 산속이다 보니 골바람 때문에 물 밖으로 나오면 체온이 급격히 떨어진다.
그래서 타월이나 겉옷을 준비하지 않으면 오래 놀기가 힘들다.
워낙 멋진 곳이라 대충 폼만 잡아도 사진은 모두 그림엽서처럼 나온다.
폭포가 잘 보이는 곳에 앉아 바람을 맞으며 한동안 사람 구경을 했다.
모두가 즐거워 보인다. 이번 여행 마지막 날 여기 온 건 참 잘한 일 같다.
기분이 많이 나아졌고 피로도 풀리는 듯했다.
폭포수가 흐르는 계곡의 마지막 연못에는 닥터피시들이 산다.
발을 담그면 이 녀석들이 나타나서 살을 뜯어먹는데 이 오묘한 기분이라니..
폭포에서 내려가면 바로 세부로 갈 생각이다.
더 돌아다니자면 못 할 것도 없지만 여행이 더 길어지면 그건 여행이
아니라 진짜 방랑이 될 것이다.
삶이 힘들다고 도망을 가면 그 삶은 끝없는 방랑이 된다.
돌아갈 곳이 없는 여행을 하는 사람은 '여행자'가 아니라 '방랑자'라 했다.
집을 떠나는 걸 좋아하지만 방랑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투말록 폭포를 내려와서 막탄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4일 전 내가 지나왔던 그 길을 반대 방향으로 달렸다.
머리가 거의 텅 빈 느낌으로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운전에만 집중했다.
배가 고플 때까지 달리다가 배가 고프면 눈에 띄는 식당에서 요기를 했다.
달리고 또 달려서 해가 질 쯤에 집에 도착했다.
이렇게 나의 '세부 남부 투어'는 끝이 났다.
처음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온 것이다.
집으로 오는 길에 유튜브에서 이런 글이 적힌 영상을 보게 됐다.
수없이 많은 사람을 살렸다는 말....
人生で素敵なことは、だいたい最後のほうに起こる
인생의 멋진 일은 대부분 후반부에 일어난다.
(일본 자살 방지 광고 카피)
이 글과 영상을 보는 순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내게 뭔가 많은 말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 많은 말을 해준 영상일 것이다.
내게 남은 시간이 아직도 많다는 것에 너무도 감사한다.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것이 있음에 다시 한번 감사한다.
그리고 쓰러지지 않고 꿋꿋이 존재할 것을 다짐 또 다짐 한다.
(15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