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shorts/yaOjLpCUnws?feature=share
나는 이 말이 너무나 깊게 공감된다.
서울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알게 된 사람이 있다.
참고로 난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친구가 없다.
이런 말을 들으면 날 아는 사람들이 섭섭해 하겠지만 사실이니 어쩔 수가 없다.
다만 내겐 가끔 연락을 하는 오래된 '제자'와 '후배'는 몇 있다.
나는 그들을 친구로 생각하지만 한국적 문화에서 '친구(Friend)'라는 표현은 나이
차가 많으면 쓰지 않으니 내 입장에서는 좀 애매한 관계이다.
이런 내게도 온라인에서 만난 친구는 있다.
그래봐야 두세 명이지만 이름도 얼굴도 나이도 모르는 사람들과 꽤 오랜 기간 교분을 터고 있다.
(몇은 얼굴을 본 적도 있다)
가끔 '친구'와 '가족'에 대한 무한의 애정을 강요하는 사람을 본다.
내 부친이 그런 분이었다.
명절이면 모인 혈족들에게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는 말로 시작되는 연설로 가족 모두를
매번 힘들게 했었다. 지금도 나는 피가 물보다 진해서 어떤 도움이 되는지를 잘 모른다.
이런 삐딱함 때문인지 난 사회에서도 친구를 쉽게 만들지 못했다.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낸 친구들은 세상의 일에 엮이며 모두가 멀어졌다.
이걸 나의 어머니는 "인복은 지지리도 없어가지고..." 이렇게 표현하지만,
솔직히 나는 인복이 있어 이렇게 됐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이해는 되지만 용납은 되지 않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면 견디기가 힘들다.
이런 내게도 가끔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그 중 한 명이 팬데믹이 끝나고 한국을 떠나기 전 겨울밤 길거리에서 만난 사람이다.
첫눈에 나와 삶의 궤적이 비슷하다는 게 눈에 보였다.
그날 밤 우리는 뜨거운 소주와 차가운 맥주를 사이에 놓고 몇 시간을 신나게 떠들었다.
오늘처럼 힘들게 눈을 뜬 아침이면 선술집에서 수다 떨던 그날이 생각난다.
아마도 이런 걸 '외로움'이라 부르는 게 아닌가 싶다.
일하는 게 점점 힘들어진다.
16시간 정도 외부 행사를 끝내고 돌아오면 24시간을 움직이지를 못 한다.
나이 탓이라는 말을 싫어하지만 이럴 때 숫자가 떠오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한국의 가을에 맞춰 끊어 놓은 비행기 표가 있다.
날짜를 세어보니 출발일이 한 달 반쯤 남았다.
서울을 스친다면 못 마시는 소주지만 앞에 놓고 회포를 풀 수 있으면 좋겠다.
지나 보니 얕게 알아도 만나서 즐거운 친구가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걸 알았다.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내 기준에서 '착한 사람'이었다.
'착함'은 내게 행복감을 준다.
여름 나라인 필리핀에서 가을의 한국으로 가는 건 큰 설렘이다.
보고 싶은 이들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는 더 큰 설렘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