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창문을 등지고 앉아 있는 여인] 앙리마티스
천사의 만, 우리가 함께하는 곳
내 어릴 적을 돌아보면, 그 당시 부천은 개발이 덜 된 시골동네에 가까웠기에 논과 밭이 많고 조금만 올라가면 산언덕에서 놀 수 있었으며 근처엔 냇가가 닿아있었다. 주말마다 부모님과 봄엔 나물을 캐고 여름엔 냇가에서 송사리를 만져보고 가을엔 잠자리채를 휘두르고 겨울엔 개구리를 잡았다. 그땐 그저 재밌기만 했던 놀이들이 내가 어른이 되고 난 후엔 소중한 추억이자 내 정서를 부드럽게 매만져준 경험들이 되었기에 새삼스레 이런 추억을 만들어준 부모님께 감사하기도 하다. 삶이 빡빡하게 느껴질 때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새겨보면 그것으로도 마음에 숨 쉴 곳이 생기듯 품이 넉넉해지곤 한다. 도시가 개발되고 발전한 만큼 자연을 쓰다듬는 날이 거의 없다 보니 어느덧 이 사회는 ‘그리너리’ ‘보테니컬하우스’ ‘플랜테리어’ 등의 트렌드를 마주하게 되었다. 더불어 내가 어릴 적 경험했던 것들을 할 수 있는 장소들이 적어졌기에 어린이집에도 ‘장수풍뎅이 보는 날’ 혹은 ‘숲체험’이라는 일례 행사들이 있다. 내가 경험했던 자연 속의 체험에 비하면 이런 행사들은 턱없이 부족한 것일 수도 있지만 다행히 매일 어린이집에서 산책을 가고 야외활동을 많이 하기에 아이가 그 안에서 많은 기쁨을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대학시절 프랑스어 강의 교수님은 프랑스의 도시 니스가 ‘천사의 만’이라 불린다고 말하셨다. 나는 교수님의 니스에 대한 찬양에 가까운 말들을 들으며 그곳에 대한 지극한 호기심이 생겼고 바다는 천사의 말을 들을 만큼 참 아름다운 자연이구나,라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화가인 앙리 마티스 또한 니스의 바다를 사랑하여 그곳에서 그의 예술을 펼쳐낸 만큼 바다가 주는 경이와 영감은 굉장하다고 느낀다. 앙리 마티스가 니스를 배경으로 그린 그림들은 대부분 작업실 창밖으로 펼쳐진 바다의 풍경과 실내의 원색적인 색감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위 그림에서도 느껴지는 장식적인 패턴과 화려한 색감의 실내, 관능적인 여성의 모습 못지않게 바다는 역시 평화롭고 눈부신 풍경을 자랑한다. 마티스는 전쟁 중에도 프랑스를 떠나지 않을 정도로 니스를 사랑했다고 한다. 그것은 바다라는 자연이 주는 평온함과 사랑이라는 감정이 전쟁이라는 불안감보다도 강력했기 때문이었으리라.
‘모든 것이 거짓말 같고, 어이가 없고, 숨 막히게 매혹적이다. 나는 매일 아침 황홀한 빛을 보게 될 것이라고 깨달았을 때, 내게 주어진 행운을 믿을 수 없었다. 나는 니스를 떠나지 않기로 결심했고, 거의 평생 그곳에 머물렀다.’ - 앙리 마티스
운이 좋게도 부산에서의 육아는 ‘바다’라는 엄청난 자연과 함께한다. 더욱이 난 바다를 바로 앞에서 마주할 수 있는 소위 “바다뷰”를 동반한 곳에 살고 있어 매일 반짝이는 수면의 빛들과 시시각각 바뀌는 지평선의 색, 그것과 맞닿는 구름들을 눈 안에 담을 수 있다. 오늘 아침만 해도 나와 아이는 아침의 황홀한 햇빛과 모순적으로 어우러진 흐리지만 커다랗게 펼쳐진 구름아래에 잔잔한 바다, 그 위의 고즈넉이 떠다니는 배들을 감상하였고 '우와' '구름 커' 같은 감탄사를 연발하며 즐거워하는 아이의 모습은 참 아름다웠다. 자기 전엔 매일의 루틴처럼 아이는 침실의 블라인드를 걷어 바다야경을 감상한다. 바다의 배가 깜빡거리는 빛과 빨간 등대의 모습 등을 바라보며 아이는 배의 개수를 세어보고 달을 찾아보기도 한다. 또한 캄캄한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기도 하며 우리 가족은 바다의 야경과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부산 광안리에 살 때엔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면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었기에 아이는 15개월 무렵까지 매일 모래놀이를 하면서 놀 수 있었고 지금 사는 오시리아 역시 가까운 송정해수욕장 및 일광해수욕장이 있어 아이가 원할 땐 맘껏 바다를 즐길 수 있다. 아이가 모래사장을 뛰어다니며 모래를 뿌리고 모래 위에 눕기도 하는 등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바다라는 자연환경이 있다는 것 자체에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충만한 행복감에 젖어 이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깨닫게 된다.
바다와 함께 하는 아이의 경험들은 내가 간직하는 어린 시절의 추억들처럼 언젠가 아이가 숨 돌릴 틈 없이 힘이 들 때 아이의 마음을 부드럽게 매만져주는 추억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더불어 앙리 마티스가 느꼈던 것처럼 무언의 불안감이 덮쳐올 때 그것보다도 강력하게 아이의 마음을 지켜주는 평온함을 줄 것이라 믿는다. 우리 가족이 살며 바라보는 이곳이 니스의 '천사의 만' 만큼이나 아름답고 우리의 일상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또 다른 '천사의 만'이 아닐까.
천사의 만, 우리가 함께하는 이 곳.
그리고 이 순간을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