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처럼 스며드는 시간

[롱샴성당] 르 꼬르뷔제

by 김채이

빛처럼 스며드는 시간




고사성어 하나가, 서로의 인생을 엮는 진짜 의미가 되는 순간이 있다.

내가 영어강사로서 강의를 하던 시절, 나와 가장 오랫동안 함께 한 학생들은 약 8년간을 함께 한 학생들이다. 이들 중 몇 명은 내 결혼식에서 축가를 불러줄 만큼 돈독한 사이이기도 하다. 내가 신부대기실에 앉아있을 때 축가 리허설을 끝낸 제자들이 축하해 주기 위해 들어왔는데 날 보자마자 눈물을 터뜨린 학생이 있었다. 이 제자는 고등학교 한문수행평가에 쓴 글에서 나를 순망치한으로 표현했었다. 순망치한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를 일컫는 말로 수행평가의 글 주제는 자신의 롤모델이었다.


아이들이 성장을 하면서 아이의 십 대 인생에서 가장 영향을 많이 미치게 되는 사람은 부모가 아니라 또래집단이 된다. 그리고 부모와 또래집단만큼이나 영향을 미치는 관계는 사제지간이다. 나 역시 그러했다.

초등학교 6학년 담임선생님은 나의 자존감을 세워주셨고 대학교 교수님들은 내 삶의 방향을 알게 해 주셨으며 대학원 지도교수님은 지금까지도 내가 흔들리지 않게 붙잡아주셨던 은인이시다. 그중에서도 대학교시절 한 교수님은 그때 나에게 롤모델에 가까웠다. 워낙 사적으로도 친했던 교수님이기에 개인적으로 영향을 많이 받기도 했다. 어쩌면 내 제자가 나를 칭했듯 나에겐 이 교수님이 사제지간에 있어서 순망치한에 가까웠던 것 같다. 난 교수님이 좋아하셨던 르 꼬르뷔지에를 똑같이 좋아하게 되었고, 그의 건축을 공부하며 철학을 들여다보았다.


https://www.fondationlecorbusier.fr/en/work-architecture

르 꼬르뷔지에는 건축을 단순한 공간이 아닌 삶을 담는 그릇으로 보았다. 그의 작품 롱샴성당은 차가운 외벽과 달리 내부로 들어서면 빛이 스며들어 따뜻하게 안긴다. 나를 지켜준 은사님들이 나에게 따뜻한 존재였듯이 롱샴성당은 ‘스승의 품’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의 또 다른 대표작인 ‘유니텔 다비타시옹’은 건물 안에 학교, 놀이터, 상점까지 품은 작은 사회였다. 교실도 다르지 않다. 아이들은 또래와 스승을 만나며 사회를 배우고 그 속에서 자신만의 세상을 키워나간다.


올해 다섯 살이 된 딸도 이제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유치원에 입학하게 되었다. 21개월 무렵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때가 아직도 눈에 선한데 벌써 신학기를 맞이하여 새로운 발돋움을 하게 된 것이다. 어린이집을 졸업하기 일주일 전 무렵, 선생님은 울먹이며 전화를 걸어와 말씀하셨다. 딸이 선생님과의 이별이 다가온 것을 아는지 선생님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평소보다 더 환하게 웃고 때로는 달려와서 안아주며 토닥여준다는 것이다.

“이제 선생님이랑 헤어질 준비하는 거야?”라고 선생님께서 묻자 고개를 끄덕이며 한번 더 안아줬다는 딸의 이야기를 들으니 나 역시 뭉클했다.

하원 후 아이에게 “요즘 선생님 많이 안아준다면서?”라고 묻자 딸은 “이제 선생님 못 보잖아.”라고 대답하며 싱긋 웃었다. 내 아이지만 뭉게구름 같은 사랑과 배려가 가득한 모습에 잡고 있던 아이의 손이 더욱 따뜻하게 느껴졌다.


어린이집을 졸업하는 날, 나는 꽃다발 두 개를 들었다. 하나는 반짝이는 눈빛으로 달려오는 아이에게, 나머지 하나는 아이를 반짝이는 눈빛으로 바라봐주었던 선생님께 드렸다.

“강사시절, 제가 아끼는 아이들을 졸업시킬 때면 마음 한편이 공허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기쁨과 행복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손 편지에 썼던 글의 일부처럼, 나는 이 마음 그대로 앞으로도 선생님께서 정들었던 아이들과 이별할 때, 새로운 아이들을 만날 때,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에 즐거움이 충만하시길 바랐다.

아이는 이제 유치원 선생님들과 함께 새로운 아이들의 사회를 만끽하고 있다.

“많이 배울 수 있어.”라는 아이의 말에서, 또 하나의 순망치한 같은 인연이 싹트고 있음을 느낀다. 이렇듯 유치원, 초등학교, 나아가 대학교까지 각 선생님들에게 그 나이에 걸맞은 교육과 관계망을 가지며 아이는 자신의 크기를 키워나갈 것이다. 가끔 나에게 긍정적인 양향을 주셨던 은사님들을 생각하며 딸에게 펼쳐질 앞으로의 삶에서도 그러한 분들이 계시지 않을까 바라본다.


어쩌면 삶은 좋은 스승을 하나씩 만나며 자라는 여정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제는, 내 아이의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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