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이, 이해의 길

[겨울의 밤] 해럴드 솔베르그

by 김채이

우리 사이, 이해의 길




며칠 전, 아이의 영유아검진을 받으러 3년째 방문하고 있는 소아과에 갔다. 이젠 딸의 얼굴이 익숙해진 원장님은 소소히 장난도 치시고 지난번 아팠던 부분도 먼저 물어보곤 하신다. 그런데 검진을 마친 뒤, 뜻밖의 질문을 던지셨다.


“엄마는 내향형이에요, 외향형이에요?”


이어지는 몇 가지 질문 끝에 나는 웃으며 되물었다.

“혹시 mbti가 궁금하신 거예요?”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으셨다.


요즘은 혈액형보다 성격을 설명하는데 mbti가 더 유용한 시대. 내 mbti는 intj이다. 선생님은 아마도 딸과 나의 성향이 어떻게 닮아가고 있는지, 혹은 다른 부분은 무엇인지 궁금하셨던 모양이었다. 딸이 아직 어리기에 딸의 mbti를 확신할 수는 없지만 딸은 확실히 외향적이고 계획적이다. 그리고 아직 어리기에 감정적이기도 하다.


”결국 아이의 mbti도 엄마를 따라갈 가능성이 커요. 엄마가 주양육 자니까. “

선생님의 말은 곱씹을수록 의미심장했다. 선생님과 나는 mbti 이야기가 단순한 성격분석을 넘어, 결국 내가 어떤 모습으로 아이에게 비치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했다.

내 intj의 성향 중에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은 ‘계획형(J)’이다. 그래서인지 난 어릴 적부터 시간과 스케줄에 예민하고 지각을 끔찍이 싫어했다. 중학교 때 단 한 번 늦잠으로 지각한 날. 고등학교 때 폭설로 버스를 놓쳐버린 날. 12년 학창 시절 동안 지각은 딱 두 번뿐이었다.

이런 성격은 아이를 육아하는 데 있어서도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만든다. 아이의 생활을 미리 계획하고 챙기는 건 장점이다. 실제로 의사 선생님의 말처럼 아이도 그런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 등원할 때면 하원 후 어디를 가야 하는지를 묻고, 본인의 생각에 중요한 일정이라면 미리 옷을 골라놓기도 하며, 주말 일정이나 배우고 싶은 수업까지 얘기하곤 한다.

하지만 단점도 있다. 시간에 쫓기면 나도 모르게 조급해지는 것이다. 시간에 압박을 받곤 하는 내 모습이 아이에겐 썩 좋아 보이지 않는 듯, 학원수업에 지각을 할 것 같아 늦을까 허둥대던 날, 아이가 내게 말했다.

”엄마, 괜찮아. 조금 빨리 걸으면 되잖아. “


순간, 웃음이 났다. 모순적이지만 이 말을 들었을 때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안도감이 들기도 했다. 적어도 아이는 나만큼 압박에 짓눌리진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만 괜찮다면.


한편, 의사 선생님은 남편과 나 모두 이성적이고 사고중심적이기에 아이가 정서적인 보듬을 필요로 할 때 그 부분을 잘 채워주는 게 아주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에 깊이 공감했다. 아이와의 대화가 종종 어긋나고 말은 분명히 오갔는데 뜻이 닿지 않고, 한참 헤맨 끝에 겨우 맞닿기도 한다. 사실 아이의 울음을 길게 이어갈 때면 “이쯤 그만해도 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놀랍게도 내가 그런 생각이 들 때쯤 아이는 솔직하게 얘기한다.


“엄마, 내가 진정이 안돼. “

그 말을 들으면 비로소 깨닫는다. 아이는 아직 조절이 안 되는 존재일 뿐인데, 나는 종종 아이에게 어른처럼 스스로 멈추고 달래길 바라왔다는 것을.

순간적으로 답답함에 앞섰지만 곧 마음을 고쳐먹는다.

알아들을 수 없는 울음이라도 그 너머에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아봐야 하는데,

조금 더 귀 기울이고 조금 더 기다리면 비로소 괜찮아질 것을,

나는 왜 먼저 손을 내밀지 않았던가.

그렇게 시간을 두고 아이를 안아주면 아이의 눈과 나의 마음이 나란히 만난다.


하랄트 솔버그, 산속의 겨울밤, 1914년, 캔버스에 유채, 160.4x180cm, 오슬로 국립미술관 소장

서로 다른 존재가 고요한 겨울 풍경 속에서 마주하며 이해하고 있는 듯한 장면.

그림 속 길은 서로 다른 위치에 있지만 결국 같은 공간에서 이어져 있다. 마치 나와 아이처럼, 서로 다른 성향과 감정을 가진 존재들이 조금씩 이해하며 함께 걸어가는 모습을 상징한다.



결국 나는 부족한 엄마다. 육아한, 거창한 가르침이 아니라 이런 작은 이해의 순간을 이어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완벽하게 알아주는 것도, 늘 참을성 있게 기다려주는 것도 어렵지만 조금씩 다가서려는 마음의 의지. 이 또한 아이를 보듬으며 배우는 용기이다.

다행히 아이는 그런 내 부족함을 단번에 비춰주는 거울이 되어준다. 아이를 키우는 건 결국 아이의 성향을 알아가는 일이면서 동시에 나를 돌아보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게 아이는 여전히 작지만 단단하게 키우는 거울이 되어주고 있다. 우리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작은 순간들이 쌓일수록, 함께 조금씩 자라고 있다.

오늘도, 나는 아이 덕분에 배움과 성장의 길을 걷고 있다. 아이와 나 사이에 놓인 길은 결국 ‘이해’라는 이름으로 이어질 것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