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나무와 벌새] 프리다 칼로
정면의 시선
복직을 앞두고 공무원 연수를 받으며 새로운 동료들을 만났다. 우리 팀은 모두 경력자들로, 다른 팀들에 비해 평균 나이가 조금 높았다. 그 덕분에 각자의 이야기는 더 풍성했고, 때로는 놀라웠다. 오랜 기간 안보를 위해 일해온 동료, 해외 생활을 접고 돌아온 동료, 전문직에서 일하다 새로운 선택을 한 동료까지. 우리는 3주간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삶의 방향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삶에는 정답이 없었다. 이렇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이라는 정해진 길 대신, 우리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인생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우리의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가 깊이 고민하고 스스로를 들여다본 끝에 이 자리에 모였다는 점이었다. 내가 육아와 일을 균형 있게 이어가기 위해 복직을 선택했듯, 팀원들 역시 각자의 가치에 따라 새로운 선택을 하고 있었다.
삶은 나를 고쳐가는 일이 아니라, 나를 창조하는 것이다. 나를 창조해 간다는 것은 더 나은 누군가가 되기 위해 현재의 나를 부정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의 나를 인정하고, 그 위에 조심스럽게 다음 걸음을 내딛는 일이다. 아픔도, 결핍도, 불완전함도 모두 나의 일부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초록빛 배경 위에 선 여자는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목에 걸린 가시 목걸이는 고통의 흔적을 남기고 있지만, 그녀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는다. 아픔을 숨기지 않는다. 그리고 피하지도 않는다. 그저 또렷하게 자신을 마주하고 있을 뿐이다. 프리다의 삶은 비극이라 말해도 될 만큼 잔혹했다. 어린 시절의 사고, 연이은 수술과 남편의 불륜, 그리고 유산. 하지만 프리다 칼로는 그림을 통해 고통을 전시하지 않고, 고통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자기 연민이 없는 그림. 그것이 수많은 사람들이 프리다를 사랑하는 이유일 것이다. 프리다의 그림은 확신을 준다. 나는 나를 알고 있고, 숨기지 않으며, 내 삶은 나를 창조해 가는 과정이라는 확신.
여섯 살이 된 딸은 그림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곤 한다. 좋아하는 모양과 자연물, 캐릭터들을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노란색으로 여백을 채운다. 모양은 최대한 반듯하게 그리려 애쓰지만, 색을 채우는 붓질에는 빈틈이 남기도 한다. 그렇게 거칠기도 하고 세심하기도 한 그림 속에서 아이는 자신의 자아를 그려낸다. 오늘 아침에도 아이는 유치원 가방에서 하트로 접힌 종이를 나에게 건넸다. 종이를 펼치자 자신과 나를 그린 사이에 커다란 하트가 놓여 있었다. 아직 아이의 세상은 엄마로 가득하다는 것을 증명하듯, 아이의 그림에는 자신과 내가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앞으로 아이의 그림은 더 넓고, 더 다양해질 것이다.
우리는 성장하면서 저마다의 세상을 품게 되지만, 정작 그것을 품고 있는 자기 자신은 잘 살피지 못한다. 점점 더 연결되면서도 동시에 더 개인화되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쉽게 타인의 시선에 흔들린다. 그래서 더더욱 나 자신을 꼼꼼히 들여다보고 고민할 필요가 있다. 어린아이가 매일 그림으로 자신을 표현하듯, 나의 성격과 장단점,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내가 이뤄온 것들과 앞으로 나아갈 방향까지. 아주 사소한 것들까지도 말이다.
언젠가는 나의 딸에게도 세상의 기준보다, 타인의 시선보다, 무엇보다 너 자신에게 집중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 그때 기억했으면 좋겠다. 네가 세상에 처음 울음소리를 낸 순간, 이미 너의 세계는 시작되었다는 것을. 너는 누군가가 되어야 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기 때문에 이미 충분하다는 것을.
너는 너 자체로 아름답다.
엄마는 언제나 너를 사랑으로 응원할게.
타인의 삶이 아닌, 너의 삶을 살아가렴.
너의 걸음으로, 씩씩하고 근사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