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춤추던 시간

[스파클/탄탄보:영원] 무라카미 다카시

by 김채이

네가 춤추던 시간



최근 케이팝데몬헌터스가 인기를 끌면서, 애니메이션을 보지 않아도 음악만은 누구나 한 번쯤 듣게 되었다. 딸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는 애니메이션보다 노래를 먼저 흥얼거렸고, 매일같이 ‘골든’을 하루에도 몇 번씩 틀어달라며 그 음악에 맞춰 춤을 췄다.

티니핑 음악, 그보다 전에는 겨울왕국의 노래들. 아이는 아기 때부터 줄곧 음악이 나오면 몸을 움직였다. 내 감정이 가라앉아 있을 때에도, 아이의 흔들거리는 엉덩이와 화려한 손짓, 풍성한 표정을 보고 있으면 금세 웃음이 피어났다. 말 한마디 하지 않아도, 아이는 춤으로 집 안의 공기를 바꾸곤 했다.


어느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아이가 춤추는 모습을 바라보는 일이 되었다. 그리고 아이가 춤을 추기 시작한 이후로, 나 또한 옆에서 함께 몸을 흔들게 되었다. 그렇게 아이를 보며 알게 되었다. 춤은 배워서 추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몸이 자연스럽게 반응하는 방식이라는 것을. 아이는 고민하지 않는다. 음악이 흐르면 몸이 먼저 움직이고, 동작은 그다음에 따라온다. 잘 추는지, 어색한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스파클/탄탄보:영원> 무라카미 다카시, 2014


몇년전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열린 무라카미 다카시의 전시에 갔을 때, 딸아이는 그의 알록달록한 문양과 색감에 흥미를 보였다. 그의 그림에는 어린아이도 좋아할만한 귀여운 얼굴들과 과감한 색, 역동적인 에너지가 가득하다. 무엇을 말하려는지 이해하기 전에, 그림은 먼저 몸에 닿는다. 감각과 반응을 먼저 일으키는 그의 그림들은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지금 느끼라고 말하는 듯하다.


아이의 춤도 그렇다. 무엇을 표현하려 애쓰지 않아도, 몸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움직인다. 살아 있다는 감각이 가장 먼저 튀어나온다. 문득 생각해보면, 나 역시 그런 시절이 있었다. 이유 없이 몸을 흔들고, 음악이 끝날 때까지 웃고, 다음 일을 걱정하지 않던 때. 언제부터인지 춤은 특별한 날에만 허락된 것이 되었고, 기분이 좋아야만 가능한 일이 되었다. 삶이 무거워질수록, 몸은 점점 가만히 있는 법을 먼저 배웠다.


아이의 춤을 바라보는 일은, 나에게 회복의 시간이 되었다. 가라앉아 있던 마음이 말 한마디 없이 들어 올려지고, 설명하지 않아도 괜찮아지는 순간. 아이는 나를 위로하려 하지 않았지만, 그 존재만으로 충분했다. 춤을 추는 아이를 보며 나는 잠시 짐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우리의 하루도 춤과 닮아 있다는 것을. 늘 생각을 앞세우며 완벽한 동작을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때로는 방향 없이 흔들리고, 박자를 놓치더라도 음악이 흐르는 동안은 몸을 맡겨도 괜찮다는 것. 쉬어가는 것도, 멈춰 서 있는 것도 삶의 일부라는 것.


“춤을 추는 동안 우리는 잠시, 삶의 무게에서 벗어난다.”

— 프리드리히 니체 (의미 인용)


몸을 움직이지 않아도 괜찮고,

음악을 틀어두지 않아도 괜찮다.

어린 시절에 추었던 춤처럼,

잠시 짐을 내려놓고 쉬어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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