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람] 베르트 모리조
너의 뒤에 있는 우리들
사실, 둘째를 낳을 생각은 없었다. 딸에게 오롯이 사랑을 주며 한 아이에게 집중하고 싶었다. 특히 유산을 겪은 뒤에는 그 생각이 더 확고해졌다. 하지만 남편과 몇 차례의 대화를 거쳐, 나는 둘째를 갖기로 결정했다. 마음을 바꾸게 된 계기는 남편의 한마디였다.
“나중에 우리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 딸아이 혼자 세상에 남겨질 것을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아파.”
첫째를 위해 둘째를 낳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둘이라면, 조금 더 견고한 가족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우려와는 달리, 딸은 동생이 생긴다는 사실을 몹시 기대하고 설레어했다. 임신 기간 동안 아이는 매일 내 배에 로션과 오일을 발라주었고, 내가 입덧으로 힘들어할 때면 손수건에 물을 적셔 이마에 얹어주곤 했다. 나보다도 너그럽고 따뜻한 아이라, 고마움을 넘어 감동을 받을 정도였다.
배가 점점 불러 만삭에 가까워졌을 즈음, 아이는 병원 진료에도 함께 가 초음파 화면을 나란히 보았다. 무엇을 얼마나 이해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내 배 속에 아기가 있다는 사실을 딸은 아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듯했다.
한 번은 급하게 병원으로 향해야 했던 저녁 무렵이었다. 딸아이는 따라가겠다며 먹던 저녁을 허겁지겁 마치고 옷을 입겠다고 했다. 그때 남편이 “아빠가 입혀줄게, 이리 와.”라고 하자 아이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며 엄마가 입혀줘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가만히 이야기를 나눠보니 아이는 “엄마 배아기, 같이 봐.”라고 말하며, 내가 자기를 아빠에게 두고 혼자 병원에 갈까 봐 불안해했던 것이었다.
“엄마가 혼자 동생 보러 갈까 봐 겁났던 거야?”
라고 묻자 아이는 “네.”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병원으로 가는 내내 내 곁을 떠나지 않으려 했다. 그 순간 나는 아이의 울음에서, 엄마인 나에 대한 깊은 애착과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동생을 향한 애정이 동시에 자라고 있음을 느꼈다.
둘째가 태어난 날부터 두 돌이 가까워진 지금까지, 둘은 꽤 사이가 좋은 편이다. 키즈카페에 가면 딸은 남동생을 챙기며 다른 아이들이 다칠까 봐 미리 엄포를 놓는다.
“내 동생이야. 다들 높이 뛰지 마. 우리 아기 위험하니까.”
이따금 동생 편을 든다며 서운해 울기도 하고, 힘이 세진 동생에게 밀쳐져 눈물을 터뜨릴 때도 있지만, 동생이 보이지 않으면 심심하다며 찾는다. 누군가 동생을 데려가고 싶다고 농담이라도 하면, 안 된다며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종종 생각하게 된다. 이 관계를 선택한 것은 아이가 아니라 나였다는 사실을.
그래서인지 이따금 잠들기 전, 문득 과거의 한 장면이나 설명되지 않은 감정들이 올라와 쉽게 잠들지 못하는 밤이면 나는 더 자주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를 떠올리게 된다. 아침에 일어나 아이들과 눈을 마주치며 웃는 시간, 남편과 잠깐 나누는 조용한 아침 식사, 하원하자마자 품으로 파고드는 아이를 안아주는 순간. 그리고 “엄마, 배 아기…”라며 눈물이 가득했던 아이의 얼굴.
행복은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나 삶을 향한 의지, 타인에게서 받는 배려에서도 비롯되겠지만, 지금의 나에게 가장 큰 행복은 이 가족을 선택했고, 이 관계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감사다. 아이가 혼자였던 시절도, 동생이 생긴 이후의 시간도 모두 나의 선택이었고 그 선택의 중심에는 언제나 딸에 대한 사랑이 있었다는 것.
앞으로도 인생에는 수많은 선택의 순간이 오겠지만,
기억해 주길.
너의 뒤에는 언제나 우리가 있고,
우리는 늘 너를 지지하고 있다는 것을.
연재를 마치며
첫 아이를 낳은 후,
한동안 나를 위한 무언가를 시작하기 힘들었을 때
딸에 대한 글을 쓰며 엄마로서의 삶을 정의하고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딸, 가족, 그리고 삶에 감사함을 되새기는 계기가 된 이 연재는
이것으로 마무리하며,
이젠 둘째인 아들에게 글을 남기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