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고 싶은 사람이 있는 사람들에게

어바웃 타임

by 글쓰는 호빵

나는 다른 사람이 좋다는 영화를 뒤로 미루다 보는 버릇이 있다. 그 이유은 귀찮아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나에게 맞는 타이밍에 영화를 보고 싶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의 인생영화라고 꼽히는 <어바웃 타임>을 본 건 할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일주일이란 시간이 지나서였다.


우리 할아버지는 내가 대학교 1학년이 되던 해 위암 판정을 받으셨다. 술과 담배를 오래 하셨지만 매일 자전거를 타시고 어디 한 곳 편찮은 데가 없으셨기에 할아버지의 위암 판정 소식은 우리 가족에게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

매일 술을 드시고 온 날이면 “이 정도 살았으면 됐다. 이제 곧 죽어야지”라고 하셨지만 할아버지는 수술이 의미 없다는 의사의 말에도 수술을 받으셨고 3년이란 긴 시간 동안 항암 치료를 받으셨다. 할아버지는 항암치료를 받으시면서 힘들다는 말을 한 번도 내뱉은 적이 없으셨고 그래서 나는 대학 생활에 취해 할아버지가 암환자라는 사실에 서서히 무뎌져 가고 있었다.


대학교 3학년 여름 방학이 되기 일주일 전 할아버지는 항암을 받기 위해 입원하셨고 여름방학이 끝날 때까지 다시 집으로 돌아오시지 못하셨다. 할아버지가 병원에 계시는 시간이 일주일이 넘어가자 나는 무뎌져 가던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그제서야 할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보냈지 못했던 과거의 나날들이 후회가 되었고 여름 방학 동안 알바가 없는 날엔 할아버지를 찾아갔다. 병실에서 본 할아버지에게서 더이상 예전의 굳건함을 찾을 수 없었고 할아버지는 너무나도 마르고 약해져 있었다. 하루하루 할아버지가 떠나는 모습을 보며 나는 3년이란 시간 동안 나를 기다렸을 할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했던 지난날이 너무나도 후회가 되었다.


할아버지가 떠나시기 전날 밤 나는 할아버지의 마지막을 직감했고 거짓말 같게도 그날 밤 꿈에서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다시금 보았다. 초등학생 때 비 오는 날친구들과 수영장에 가기 전 새 수영복을 시장에서 사주시고 비오니 택시 타고 가라며 택시비를 주고 혼자 비를 맞고 가시던 모습, 여름에 학교를 마치고 오면 빙수를 만들어 주시던 모습, 배고프다고 하면 오므라이스에 양배추 샐러드를 만들어 주셨던 모습, 술 드시고 오시는 날이면 할아버지가 죽고 나면 할머니에게 잘하라고 말하시던 모습, 첫 항암을 맞고 초코 하임 과자가 드시고 싶다고 그림을 그리며 과자를 설명하시던 모습. 그 모습들을 꿈에서 보고 난 후 아침에 일어나 엄마로부터 할아버지 부고 소식을 들었을 때 이상하게도 전혀 놀라지도 실감이 나지도 않았다. 아니 오히려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 할아버지 집은 너무나도 쓸쓸했다. 집도 주인이 이제 없다는 것을 안다는 듯 두 달 동안 비워져 있었던 흔적이 눈으로, 코로 느껴졌다. 가족을 떠나보낸 것이 처음이었기에 나에게 경험해보지 못한 슬픔과 함께 죄책감과 두려움이 찾아왔고 매일 밤 울었고 밥은 제대로 먹지 못해 살은 계속 빠졌다. 그러길 일주일이 지나 <어바웃 타임>을 보게 되었다.


<어바웃 타임>을 보며 나에게도 주인공처럼 원하는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는 능력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할아버지가 편찮으시지 않았던 순간으로 돌아가 할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어릴 땐 가족보다 내가 중요했기에, 또 가족들과는 언제든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지 못했다. 언제 집에 오냐는 할아버지의 전화에 항상 다음으로 미루었던 시간들을 만회하고 싶었다. 주인공이 자신의 아이를 지키기 위해 다시는 시간을 되돌려 아버지를 보러 올 수 없다고 아버지에게 말하는 장면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오늘이 그날이구나.”
“아기가 곧 태어날 것 같아요.”


“그저 내가 이 날을 위해 시간 여행을 한 것 처럼 나의 특별하면서도 평범한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며 완전하게 지내려고 노력할 뿐이다.”


‘시간은 금이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라는 말은 너무나도 진부해서 더이상 명언의 기능을 갖지 못한다. 하지만 진부하다는 말은 어쩌면 가장 중요하다는 말과 동의어일지도 모른다. <어바웃 타임>이 주는 의미는 아주 명확하다. 시간은 영원하지 않으니 소중히 생각하고 현재를 행복하게 즐겨라. 나는 더이상 과거의 후회,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현재의 행복을 놓치는 일은 만들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와 더불어 가족들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은 될 수 있는 한 놓치지 않겠다고도.


이 다짐을 잊어버리지 않기란 너무나도 힘든 일이지만 이 다짐이 희미해져 간다는 것이 느껴질 때면 <어바웃 타임>과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떠올린다. 그리고 이 다짐을 지키기 위해 이번 설에는 처음으로 가족들에게 고스톱을 배웠다.


이번 설에도 할아버지는 여전히 보고 싶었고, 고스톱을 배우는 동안 할아버지와는 한 번도 쳐본 적이 없다는 사실에 울컥하는 마음을 모른 척 하기는 힘이 들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해 이 멋진 여행을 만끽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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