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에요. 두부 세 모가 선물로 들어왔어요. 송편이 아니라 두부요. 하얗고 네모 반듯한 두부를 내려다보면서 인생을 돌이켜 보아요. 잘못 산 일들이 생각나요. 부끄러운 일들도 떠올라요. 내가 모르는 죗값을 치러야 하는 일들도 있을지도 몰라요. 그렇다고 이렇게 대놓고 두부를 한 모도 아니라 세 모 씩이나 주다니요. 입 짧은 편식 모자 둘이 사는데 이 두부를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틀 야근에 오늘 또 출근이라 추석과 무관하게 지냈지만 피곤이 덕지덕지라서 매콤한 게 땡기기는 해요.
그래서 "라라라, 라파 두부"
두부는 가로 세로 높이 2센티로 썰어요. 부피는 얼마?
파, 마늘, 양파를 대충 썰어요. 어차피 지지고 볶을 거니까요. 냄비를 살짝 달궈요. 냄비 바닥에 손바닥을 대려고 하는 순간 뜨거워서 움찔하게 되는 그 온도로 달궈요. 기름을 넉넉하게 부어요. 여기서 넉넉하게는 파, 마늘, 양파가 다 잠길 정도.
마늘을 넣고 으음, 갈릭 스멜 올라오면 파를 넣어요. 파가 뜨거운 기름에 파파팍 자지러지면 양파를 넣어요. 고춧가루도 한 숟갈 넣어요. 마구마구 볶아줘요. 저는 며칠 전에 매운 것을 못 먹는 내게 청양고추를 안 매운 풋고추인 것처럼 먹으라고 권했던 사람을 떠올리면서 딸딸딸딸 볶았어요. 청양고추도 대충 다져서! 같이 볶았어요. 매운 냄새갸 확 올라와요. 그날의 아찔했던 혀끝의 매운맛이 생각나요. 불끈 우두둑 두고 보자!
네? 마파두부에는 돼지고기 다진 것을 넣어야 한다고요? 우리 집에 그런 거 없어요. 라구 소스는 있어요. 라구 소스에 다진 고기 들었잖아요. 그러니까 라구 소스를 한 국자 퍼서 넣어요. 같이 볶아요. 그래서 마파두부가 아닌 라파 두부!!!
물을 부어요. 두부 한 모당 물을 반 컵 정도 넣어요. 두부를 넣었을 때 두부의 이마가 살짝 잠길 정도로만요. 퍼글 퍼글 끓여요. 맛있는 냄새가 나요.
국물을 조금 떠서 간을 보아요. 짭짤한 게 좋아요. 속 희고 순한 두부가 들어가면 물도 나오고 간도 흐려지니까요. 미리 국물을 짭짤하게 해야 끓이다가 '어라 물이 왜 이렇게 많아졌지? 왜 싱겁지?' 이런 고뇌에 빠지지 않게 되거든요. 국물(소스)이 준비가 끝났어요.
정육면체로 썰어 둔 두부를 넣어요. 가로세로 높이 규격이 2센티가 안 되는 것들은 넣지 마세요. 농담인 거 아시죠. 그냥 막 넣으세요. 꼭 잡으면 터질세라, 슬쩍 잡아 놓칠세라 애 태우는 마음으로 두부를 살살 저어줘요. 희고 고운 두부의 살결이 뜨겁게 달아올라 빠알갛게 되도록요.
중 약불에 끓여요. 5분만 끓이세요. 젓지 않고 그냥 두면 두부가 냄비 바닥에 눌어붙어요. 저어주세요. 마구 휘저으면 두부가 으깨져 버려요. 그러니 살살, 새벽녘 잠든 그녀의 머리통 밑에 깔려 있던 팔을 뺄 때처럼 사알 살 아주 살살 저어줘요. 팔 빼는 동안에 5분 지났네요. 불 끄세요.
녹말물은 안 넣느냐고요? 네 깔끔한 게 좋아서 안 넣어요.
간은 안 보냐고요. 들었다 놨다 간 보는 거 싫어해요. 간 보는 인간도 싫어해요. 각자 입맛에 맞게 간하세요.
며칠 전 새벽에 남자 간병사 한 사람이 반찬으로 먹는다고 생마늘을 까고 있던 게 생각나서 두부 세 모 다 만들었어요. 병원에 가져가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