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항상 바쁘시다. 설을 앞두고도 바쁘시다. 그래도 해야만 하는 일들이 있다. 저녁을 먹고 설거지가 끝나면 커다란 다라이에 쌀을 씻는다. ‘함지박’이 맞는 말이지만 그때 엄마의 말처럼 ‘다라이’라고 쓰고 싶다. 밥을 할 때처럼 작은 양이 아니라서 쌀을 씻는 것도 일이다. 크게 두 팔을 휘저어 가면서 씻어야 한다. 다 씻은 쌀을 밤새도록 불린다. 아침이 되면 소쿠리에 쌀을 건져 물기를 뺀다. 적당히 물기가 빠진 쌀을 이고 방앗간으로 간다. 나도 데리고 간다. 방앗간에 도착하면 엄마는 이고 갔던 쌀을 내려놓는다. 이미 줄이 길다. 줄 끝에 엄마가 이고 온 다라이를 놓고 내게 지키게 한다.
엄마는 바쁘시다. 설을 앞두고도 바쁘시다. 하지만 설을 쇨 것들을 장만해야 한다. 방앗간이 있는 시장에 나선 김에 차례상에 올릴 제수를 이것저것 고르신다. 포나 약과나 옥춘은 미리 사도 괜찮은 것들이다. 과일도 미리 장만한다. “차례상에 놓을 것이니 제일 크고 좋은 것으로 주세요.” 엄마는 손으로 고르지도 않고 값을 깎지도 않는다. 엄마는 양손 가득 장을 봐서 집으로 간다. 떡이 다 되면 다시 오시겠지.
방앗간 안은 사람들로 복작복작한다. 발 디딜 틈이 없다. 금방 뽑은 떡가래처럼 긴 줄은 방앗간 밖에까지 이어져 있다. 나처럼 아이들이 제집에서 가져온 쌀 소쿠리를 지키고 있다. 방앗간 안은 기계들로 시끄럽다. 천장까지 닿는 기다랗고 두꺼운 벨트가 휭휭 돌아가고 쌀을 빻는 기계에서는 하얀 가루가 달달달달 계속 나온다. 쌀가루가 다 나오면 방앗간 주인은 나무 막대로 기계를 탁탁 친다. 그러면 기계 안에 붙어있던 가루까지 싹 떨어진다. 한 번, 두 번, 세 번 정도 가루를 빻으면 이제 떡을 만들 차례다.
커다랗고 네모난 시루에 가루를 넣고 수증기가 풀풀 나오는 틀에 얹는다. 떡이 다 쪄지면 떡을 뽑는 기계 위에 쏟아붓는다. 뜨거운 떡이 판두부처럼 쏟아져 내려오면서 김이 펄펄 난다. 기다리던 일꾼이 떡을 재빨리 구멍으로 밀어 넣는다. 기계 밑에는 찬물이 가득 들어있는 빨간 고무 다라이가 있다. 그 위에는 동그란 구멍이 두 개 있다. 구멍에서 하얀 가래떡이 밀려 나오기 시작한다. 떡을 받아내는 사람이 바빠진다. 적당한 길이가 되면 재빨리 떡을 끊어서 노란 플라스틱 상자에 담는다. 떡이 꼬이거나 구부러지면 안 된다. 반듯반듯하게 잘 담아야 한다. 아저씨가 쪼그리고 앉아 우리 집 떡을 기다리는 내게 물기로 미끈한 가래떡을 한 뼘 뚝 끊어 주신다. 말랑하고 따뜻하다. 소금 간으로 살짝 간간하다. 목구멍으로 꿀떡꿀떡 넘어간다. 기분이 좋아진다. 방앗간에서 발 시리게 기다린 일도 엄마가 올 때까지 기다릴 일도 지루하지 않다.
그렇게 받아온 떡을 집에 가져오면 그날 간식은 가래떡이다. 말랑한 떡을 참기름 간장에 찍어먹고 꿀에 찍어 먹는다. 많이 먹어서 목구멍에서 시큼한 밥 트림이 올라온다. 배가 뽈록해진다. 시원한 곳에 며칠 동안 떡을 굳힌다. 칼로 썰었을 때 칼날에 물컹하게 묻는 것도 없어야 하고 낑낑거리며 힘을 줘서 칼질을 할 정도로 딱딱해져도 안된다. 손으로 잡으면 딱딱하지만 칼을 넣으면 매끈하게 잘리는 정도로 마르면 이제 떡을 써는 일이 남았다.
엄마는 바쁘시다. 설을 앞두고도 바쁘시다. 그렇지만 떡이 너무 딱딱해지기 전에 썰어야 한다. 저녁 밥상을 물리고 텔레비전 연속극을 보면서 떡을 썬다. 한 조각 한 조각 같은 두께로 나오는 떡이 신기하다. 엄마는 떡을 한 줄 썰어 소쿠리에 담고 다시 한 줄을 뜯어내어 또 썬다. 나는 구경한다. 구경하다가 아빠가 연탄난로에 구워주는 가래떡을 먹는다. 연탄난로에 떡을 구우면 겉은 노랗고 바삭하다, 속은 하얗고 쫄깃하다. 이에 붙으면 뜨겁다. 씹기 전에 하아 하고 한 번 숨을 내쉬면서 식혀야 한다. 떡이 다 썰어지면 설이 코 앞이다.
엄마는 여전히 바쁘신데 아직 만두도 빚어야 하고 전거리도 장만해야 한다. 감주도 담아야 하고. 일곱 식구 밥도 해야 하고. 하고, 하고, 하고, 학학학, 헉헉헉, 엄마는 바쁘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