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날은 뭘 좀 치대야겠다.
하여 밀가루를 꺼내 양푼에 담고 물을 붓고 반죽을 한다. 물이 가루 사이로 스며들면서 가루들이 엉겨 덩어리가 된다. 덩어리를 주물주물 주무른다. 꾹꾹 누른다. 퍽퍽 두드린다. 괜히 꼬집는다.
이런 날은 뭘 좀 우려야겠다.
하여 잘 마른 멸치 대가리를 싹둑 끊어내고 물에 넣는다. 다시마도 한 조각 뚝 끊어 넣는다. 물이 팔팔 끓는다. 끓는 물속의 멸치가 둥둥 떠오르더니 휙 뒤집힌다. 다시마 조각은 퉁퉁 불어 칠렐레 팔렐레 정신이 없다.
이런 날은 뭘 좀 썰어야겠다.
하여 칼을 들고 호박을 썬다. 잘린 자리에 맑은 물이 돋는다. 양파를 썬다. 잘린 자리에 매운 물이 맺힌다. 감자를 썬다. 잘린 자리에 뿌연 물기가 어린다. 대파를 썬다. 잘린 자리에 끈끈한 물이 달린다. 묵은 김치도 썬다. 뻘건 물이 주르륵 흐른다.
이런 날은 뭘 좀 뜯어야겠다.
하여 주무르고 누르고 두드렸던 밀가루 반죽을 잡아 뜯는다. 하얗게 반반한 귀퉁이를 주욱 늘여 뜯는다. 뜯어져 너덜너덜해진 곳을 또 뜯는다. 아무것도 모르고 둥글던 반죽이 바람에 오래 매달렸던 깃발처럼 찢겨나간다.
우려진 국물에 썬 것을 넣는다. 뜯은 것도 넣는다. 썬 것이 떠오른다. 뜯은 것도 떠오른다. 마늘을 꺼내 씻는다. 마늘을 먹으며 견뎠다는 신화를 생각해본다. 생각을 지운다. 식칼 자루 끝으로 찧는다. 쾅쾅쾅 쾅 쾅쾅쾅 쾅. 마늘의 반달은 사라지고 없다. 청양고추도 두 개 꺼내 씻는다. 잘게 다진다. 다진 마늘과 청양고추를 뜨겁게 끓는 국물에 넣는다.
이제 훌쩍훌쩍 눈물 콧물이 나도록 먹어야겠다. 먹어야 오늘을 산다. 오늘을 살아야 내일이 오늘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