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희정 Dec 21. 2023

보길도 가는 길3

새벽 네 시 문득 잠에서 깼다. 음악 소리가 작게 들린다. 방문 밑으로 불빛이 들어온다. 내 방이 아니다. 여긴 어디지? 아, 보길도. 배를 타고 섬으로 왔지. 어제 저녁 식사를 하고 고산 윤선도 문학관에 짐을 풀었던 것이 떠올랐다. 이곳에는 국내외 문학인이 보길도에서 장기간 머물며 창작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문학창작실이 마련되어 있다.


시원한 공기를 마시고 싶어 현관문을 열었다. 별, 별, 별이다. 문을 열자마자 북두칠성 일곱 개의 별이 기다렸다는 듯이 눈앞에 나타났다. 고개를 든다. 이마 위에도 정수리에도 별이 있다. 이렇게 선명한 별자리를 본 적이 언제였나. 열두 살 무렵 친구 집에 놀러 갔다 저녁을 먹고 집에 오던 겨울밤 하늘을 가로질러 흐르는 별 무리를 본 적이 있다. 그게 사십 년도 훨씬 전 일이다. 나는 방에서 원고를 쓰느라 끙끙거리고 있는 종횡무진 선생님을 얼른 불렀다.


“나와 봐요. 별, 별이 보여요. 정말 많이요.”


나의 호들갑스러운 목소리에 종횡무진 선생님도 신을 꿰신고 나오셨다. 선생님과 나는 감탄을 하며 별을 보았다. 목을 있는 대로 젖히고 별을 따라다녔다. 음력 스무이틀 반달도 또렷한 달무리를 두른 채 어둠이 졸고 있는 검은 처마에 걸려 있었다. 고산 문학관은 한옥으로 지어 기와지붕을 얹었다. 두 건물의 처마와 처마가 만들어낸 좁은 폭의 기다란 밤하늘이 마치 한줄기 강물 같았다. 별들이 우주의 강에서 물고기처럼 비늘을 반짝이며 빛나는 모습은 아름다웠다. ‘지국총 지국총’ 밤뱃놀이에 ‘지극총총 지극총총’ 별빛이 출렁거린다. 별이 지극한 밝음으로 어둠을 뚫고 있다. 우리는 도시에서 온 티를 내느라 사진을 찍으며 수선을 떨었다. 매일 보는 별과 달을 가지고 뭐 그리 유난을 떠냐는 듯이 담장 너머 농가에서 개가 짖는다. 딱 한 번 컹 짖고 조용하다. 다시 졸고 있나보다.


별구경을 한참 하고 방에 돌아와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여명이 밝아오면서 멀리 닭 우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는 후다닥 나갈 준비를 했다. 빠진 물건이 없는지 숙소를 둘러보는 데 큰새 선생님께서 도착하셨다고 나오라는 전화를 주셨다. 정확하신 분이다. 집에서 아침을 대접해주신단다. 선생님 댁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커다란 대문이 열려져 있었다. 처음 보길도에 정착하시고 쇠로 만든 문을 만들어 달았더니 주민 대표가 찾아와 보길도에는 대문을 달지 않는다고 했단다. 대문이 없다니 정이 후한 섬의 인심을 알 수 있다. 하여 선생님도 대문은 만들었지만 24시간 열어두신단다.


선생님 댁 마당에는 여러 종류의 나무가 있었는데 그중에 자잘한 흰 꽃을 달고 있는 나무가 내 눈길을 잡아끌었다. 비파나무란다. 장미목 장미과의 아열대식물이란다. 잎이 중국 악기인 비파 모양을 닮아서 비파나무라고 한다는데 내가 보기에는 이파리보다 열매가 비파 악기를 닮은 것 같다. 십이월에 꽃이 피기 시작하면 진노랑의 갸름한 타원형의 열매는 언제 달리는 걸까 궁금했다.


선생님 댁 거실 앞 커다란 유리창으로 바다가 보였다. 부럽다. 맑은 날이면 물빛 고운 바다를 보고 흐린 날이면 구름 빛 회색으로 얼룩이 스미는 바다를 보고 비가 오는 날이면 수직으로 내려꽂히는 빗물을 너른 품으로 받아주는 바다를 볼 수 있는 것을 부러워하다가 뜬금없이 ‘바다’는 매일 다른 모습의 하늘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어서 ‘바다’인 걸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바다를 보며 감탄하다가 고개를 좌측으로 돌리면 다른 통창으로 산이 보였다. 더 부러웠다. 대문 없는 마당이 펼쳐져 있고 바다와 산이 동시에 보이는 거실이 있고 거기에 놓여있는 커다란 책상을 보자 갑자기 ‘일 포스티노’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큰새 선생님 댁에도 삶이 이야기로 빚어지는 것을 궁금해하는 바닷가 젊은이가 ‘소설’을 알고 싶다고 찾아오지 않을까.


나는 사모님께서 만들어주신 전복죽 한 사발을 게눈감추듯 먹어 치웠다. 쫄깃한 전복살을 씹으면서 배를 타고 보길도로 오면서 보았던 전복 양식장이 생각났다. 전복 양식으로 일 년에 버는 돈이 몇억 단위라는 큰새 선생님의 설명도 떠올랐다. 구릿빛 팔뚝으로 전복을 따는 보길도 사내를 유혹해 볼까? 훗. 내가 망상의 나래를 질척이며 전복죽을 먹는 동안 종횡무진 선생님은 사모님과 이야기꽃을 피우고 계셨다. 어디를 가도 누구와도 진솔하게 종횡 구별없이 무궁무진하게 얘기를 끌어내는 선생님의 솜씨가 감탄스럽다. 감탄하면서 나는 먹었다. 전복죽과 샐러드와 과일과 큰새 선생님께서 손수 타 주신 커피까지 홀짝홀짝 마셨다.


새벽 네 시 문득 잠이 깼다. 밖은 어둡다. 베란다 창밖으로 이파리 다 떨군 감나무가 싱겁게 서 있다. 주차장에는 차들이 가득하다. 별은 없다. 집으로 돌아온 지금도 눈을 감으면 먼 하늘에서 날아온 별빛과 깊은 산에서 달려온 새 소리가 어울려 출렁이는 그 시간, 그때가 선명해진다. 졸던 개가 컹 짖던 소리가 그립다. 신도시 소형 아파트 좁은 거실 탁자에 놓인 모과 한 알을 바라본다. 큰새 선생님께서 마당에서 따 주셨다. 열매를 집어 들어 코에 대 본다. 향긋하다. 눈을 감는다. 나는 보길도에 있다. 고산 윤선도처럼 살고 계신 큰새 선생님 댁 마당 모과나무 아래에 서 있다.



작가의 이전글 나무는 하나이면서 하나가 아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