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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정 Aug 13. 2023

나무는 하나이면서 하나가 아니다


나무는 하나이면서 하나가 아니다. 우듬지에는 이제 막 돋은 아가의 젖니 같은 연두 순이 있고 그 아래에는 아장아장 걷는 아이처럼 가벼운 바람에도 촐랑거리는 어린 가지가 있다. 조금 더 아래에는 힘껏 달리는 소년의 주먹처럼 단단한 마디를 가진 가지가 있고 땅과 더 가까운 곳에 있는 가지들은 청년의 다리처럼 굵고 튼튼하다.      


봄나무는 첫봄을 같이 한 가지나 올해 새로 나온 어린 가지 모두에게 골고루 꽃을 달아준다. 여름 나무는 하늘 가까이 달린 이파리나 땅 가까운 잎 모두에게 초록 그늘을 그리는 방법을 알려주고 가을이 되면 나무는 자기 몸 구석구석에 가을볕을 물들여 여름을 말리고 색을 입혀 낸다. 겨울에는 여린 가지나 굵은 가지나 눈 이불을 함께 덮고 잠을 잔다.      


사람은 나무와 다르기도 하지만 나무와 같기도 하다. 몸은 나무와 달리 지금의 나이를 보여주지만 마음은 나무처럼 가지가 많다. 그래서 한 사람 안에는 어린 내가 있고 젊은 내가 있고 지금의 내가 있다.      

바람이 불면 나무의 모든 잎이 흔들리듯이 슬픔이 불어오면, 한 사람 안의 모든 자기 자신이 울게 된다. 그러니 지금 내가 어른이라고 슬픔을 드러내는 것을 민망해할 필요는 없다. 어른인 내가 참고 숨기기만 하면 내 안의 아이는 눈물을 속으로 삼키다가 결국 마음이 출렁거리고 넘쳐난 슬픔에 몸은 젖은 종이 인형이 되어버린다. 비가 오면 나무가 우듬지부터 뿌리까지 다 젖듯이.    

  

그러니 슬플 때는 자신 안에 숨어 우는 아이를 불러내 울어라. 친구에게 울고 있는 어린 나를 달래 달라고 기대는 것도 괜찮다.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기쁨이 올 때는 나무가 봄에 모든 가지에서 꽃을 피우듯이 온몸으로 온 마음으로, 내 안의 모든 나와 기쁨을 즐겨라. 꽃은 보는 사람도 즐겁게 한다. 그러니 친구에게도 피어나는 내 기쁨을 보여주고 같이 즐기자.     


나무는 하나의 몸으로 모든 나이를 산다. 사람은 나무와 다른 것 같지만 나이테를 새기며 사는 것은 나무와 같다. 그러니 너무 어른이라는 지금에 갇히지 말고 나무처럼 살자. 나이테만큼 오래된 굵은 가지처럼 묵묵하고 단단하게 버티는 것도 좋지만 때로는 어린 나뭇가지처럼 천진하게 흔들리며 그렇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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