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현민 Oct 26. 2022

빌어먹을 코미디

그 겨울, 영등포에서

코미디를 한답시고 영등포역에서 노숙을 한 적이 있다. 단 하루였지만 잠을 자지 않았기 때문에 영등포역의 새벽을 온전히 경험할 수 있었다. 칼바람이 부는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영등포역에 노숙인이 이렇게나 많은 줄 처음 알았었다. 그들은 박스나 종이 등으로 자신만의 집을 만들고는 그 위에서 잠을 청했다. 나는 차마 그렇게 할 수는 없기에 아무 데나 앉아 밤을 꼴딱 새웠다. 집 나오면 개고생이라는 정확했다. 그날 나는 영등포역의 '노숙인 38' 정도쯤 됐을까. 솔직히, 조금 후회됐다. 


막상 서울에는 올라왔지만 수중에 돈이 별로 없던 나였다. 그래서 숙명처럼 가장 값싼 고시원을 찾아가 창문 없는 방에 2주일 정도 머무르게 됐다. 한 달 정도 살 돈도 없던 것이었다. 덧붙이자면 '창문'이 없는 방이지만 

그래도 '다른 형태의' 창문은 존재했다. 바로 복도와 연결된 문 위에 조그맣게 달린 미닫이문이었다. 마치 최소한의 산소를 공급하기 위해 설치된 것 같았다. 결국에는 복도도 실내이기 때문에 환기가 더럽게 안 됐다. 이곳에서는 그냥 몸만 누울 수 있는 공간에 가구처럼 가만히 있어야만 했다. 코미디라는 큰 꿈을 가지고 왔는데 내가 있는 곳은 매우 작은 공간이었다. 더욱 슬픈 건, 이 코딱지만 한 방이 아늑하게 느껴졌다는 거다. 영등포역 바깥에서 지내는 것보단 훨씬 더 인간적이니까.


밥과 라면. 고시원에서는 먹을 것이 기본으로 나왔다. 심지어 딱딱하지만 침대와 작은 TV까지 제공되었다. 그 작은 TV로 시트콤인 하이킥을 즐겨봤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물론 볼륨은 옆방에 들리지 않게 최소로 줄여야 했지만. 그렇게 고시원에서 살면서 방과 TV에 맞춰 내 꿈의 크기도 작아지는 것 같이 느껴졌다. 그 당시엔 꿈이 밥을 먹여주진 않았다. 밥은 고시원이 먹여줬다. 서럽게도 TV 속 연예인들이 부러워졌다. TV와 나는 한 뼘 거리인데 그 속의 사람들과 나는 천지 차이였다. 꿈은 TV 브라운관과도 같았다. 내 손으로 만질 수 있지만 만질 수 없는 것이었다.


회당 500만 원 받는 TV 속 연예인 : 자기가 이만큼 못 산다고 자랑한다. 
일당 5만 원 받는 인스타 속 어느 청년 : 자기가 이만큼 잘 산다고 자랑한다.

                                                                                         엄마 없는 농담, <가난> 중에서


어느 날, 오라는 꿈은 안 오고 치통이 찾아왔다. 밤에 자는 동안 통증이 극심했다. 아마도 어금니가 썩어서였을까. 아님 사랑니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수중에 돈이 없었기 때문에, 치과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고시원에서 살 돈도 없는데 치과라니, 그냥 볼을 부여잡고 통증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것밖에. 서러웠다. 내가 무엇 때문에 이 고생을? 코미디를 하겠다며, 그런 내가 지금 TV로 하이킥을 보다가 치통에 무너지고 있다. 빌어먹을 코미디. 코미디로 밥 빌어먹고 살겠다는 꿈이 아득해졌다. 


영등포의 주유소에서 일했던 일이 생각난다. 주유소가 먼저였는지 고시원이 먼저였는지 타임라인은 잘 생각이 나질 않는다. 중요한 건 둘 다 조그만한 공간에 내가 욱여넣어졌단 거다. 1평짜리 고시원에서는 침대에 누워 내 꿈의 크기를 가늠했고, 1평짜리 주유소 대기실에서는 바깥에 펼쳐진 드넓은 공간을 차가 올 때까지 응시했다. 나는 남의 차에 연료를 넣어주는 일을 했다. 그런데 내 꿈의 연료는 점점 바닥이 나는 기분이었다. 코미디였다. 먼 꿈을 잡기보다는 가까운 음식이 고팠다. 


그 작고 추운 대기실에서 주유원이었던 내가 한없이 부러워했던 것이 생각난다. 고급 외제차 같은 것이 아니었다. 길거리에서 엄마 손을 잡고 걸어가는 아이의 모습이었다. 그런 작고 소소한 것이 가장 부러웠다. 왜였을까. 그때의 나는 아이를 보고 이렇게 생각했다. 저 아이는 가족과 함께 어디 따뜻한 식당에서 가서 아무 걱정 없이 맛있는 음식을 먹겠다고. 내 머릿속에 그려지는 아이의 모습은 차가운 주유소 대기실에는 없는 따스한 난로 같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꿈을 좇다 보면 현실이 부러워지는 모양이었다.


먼 꿈을 좇다 보니 어느덧 허상이 점점 실상이 되어감을 느낀다. 지금은 고시원에서 본 TV 속 연예인들을 직접 만져볼 수 있을 정도니까. TV가, 그 안의 세상이 진짜로 내 손에 만져진다. 농담으로 빌어먹는 데에 성공했다는 뜻이다. 생각해보면 고시원에서의 치통은 나에게 지독한 성장통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겨울, 영등포 주유소에서 내가 부러워했던 아이는 이제 그때처럼 부럽지가 않다. 참 힘든 길을 잘도 걸어온 것 같다. 코미디를 하겠다고 마냥 서울에 올라온 무식한 패기. 그리고 영등포역에서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밤을 지낸 나. 그 새벽, 영등포에서 내가 한 것은 어쩌면 노숙이 아니라 기다림이었을지도 모른다. 별처럼 먼 곳에서 서서히 내게 다가오는 꿈을 말이다. 그리고 그 꿈은, 지금, 농담처럼 내 눈앞에 와있다. 거참, 인간승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