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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민 Oct 26. 2022

종합캔디라 미안합니다

회의실의 (꿉꿉한) 미운오리새끼

나는 후줄근한 사람이다. 그것은 일터에서도 마찬가지. 대충 옷을 걸치고선 모자를 푹 눌러쓴 채 집 밖을 나선다. 이놈의 경의선은 항상 제시간에 도착하는 법이 없다. 그렇게 프리랜서인 나는 한적한 오후 지하철을 타고 물건처럼 운반된다. 자주 모자를 쓰고 나가면 간혹 선배나 동기가 장난 섞인 질문을 한다. '머리 안 감고 왔지.'라고. 이것은 억울한 오해임이 분명하다. 나는 모자를 간편해서 쓰는 것이지 머리를 감지 않았기 때문은 아니니까. 마치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모자를 벗기 전에는 모르는 것이다. 그러니 모자를 썼다고 함부로 재단 말아주길. (물론, 안 감은 날도 있긴 하지만.)


그때 나는 신촌의 고시텔에서 잠시 지낼 때였다. 그러고 보니 영등포에서도 고시원에 있었다. 바뀐 건 고시'원'에서 고시'텔로' 한 글자가 바뀐 것. 당시 내 인생은 180도의 1/3인 60도 정도 바뀌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물론 사실이 아니다. 고시원이나 고시텔이나 그냥 똑같다고 해도 무방하다. 이때에도 나는 창문 없는 방에 살고 있었다. 이런 방의 가장 큰 단점은 환기가 안 된다는 것. 그러니까 빨래를 말릴 때도 방 안에 걸려 말리는 것. 이게 문제였다. 


일하던 방송이 종영이 된 어느 날이었다. 사적으로 그리 이야기를 나눈 적 없는 선배 작가가 선물을 사준다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편의점에 들어갔다. 그리고 내 손에 쥐어진 것은 다름 아닌 '페브리즈'였다. 아... 순간 미안하고 창피했다. 고시원에서 말린 옷들에서 그동안 특유의 꿉꿉한 냄새가 난 모양이었다. 긴 회의 기간 동안 그랬을 선배들에게 민망했다. 사실 이때는 고시원에 산다고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었다. 어린 나이에 자격지심이었을까. 모자를 쓰는 것과 마찬가지로 페브리즈 사건도 억울한 면이 있다. 혹시 안 씻어서 난 냄새라고 착각했으면 어떡하지? 동료분들, 이제야 말합니다. 고시원에서 빨래를 말려서 그런 냄새가 났어요. 미안합니다. 가난이 죄인가요. 그렇지만 샤워는 매일 했으니 오해 말아주세요. (물론, 안 씻은 날도 있긴 하지만요.)


자꾸 더러운 이야기만 하는 것 같다. 이번에는 조금 달달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다. 내가 막내작가이던 시절 코미디 프로에서 일할 때의 일이다. 화이트데이가 다가와서 나는 고민이 되었다. 분명 뭔가를 사 가긴 해야 할 것 같은데... 하지만 수중엔 돈이 별로 없었다. 진짜다. 한 달에 100만 원도 안 주던 때였는데 남아야 얼마나 남았겠는가. 그렇게 고민은 화이트데이 당일까지 이어졌다. 고시원에서 나온 나는 (샤워를 하고) 모자를 푹 눌러쓴 채로 터벅터벅 걸어 나왔다. '사탕을 살까 말까' 고민은 계속 이어졌다. 안 사자니 다른 막내들이 사 왔을 것 같고 사자니 10명이 넘는 선배들 것을 다 사려면 2만 원(당시 내겐 큰돈)이 넘을 것 같았다. 


그러다가 나는 일단 동네 마트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편의점은 더욱 비쌌을 테니까. 마트에 가서 사탕 코너를 둘러보던 나는 어마어마한 걸 발견했다. 선배들에게 돌리고도 남을 정도로 양도 많고 게다가 가격까지 저렴한 저것!


종합캔디 - 4800원.



바로 중소기업에서 나오는 종합캔디였다. 족히 100개는 들어있을 것 같은 사탕, 그리고 맛도 다양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전부 다 맛없는 맛이었지만. 그렇게 난 커다란 못생기게 대충 포장된 중소기업 종합캔디를 사 들고 회의실로 갔다. 그런데 테이블에는 다른 작가들이 준비한 예쁘고 아기자기한 사탕들이 놓여있었다. (분명 편의점에서 비싸게 샀으리라) 그 옆에 내 종합캔디를 놓았는데 정말 크고 투박해 보였다. 회의가 진행되면서 자연스럽게 가져온 사탕들을 먹었다. 그리고, 회의가 끝날 시점에 나의 못생긴 종합캔디는 아무도 손에 대지 않았다. (사실 나도 먹지 않았다. 차라리 돈 좀 주고 맛있는 걸 살걸. 역시 어설프게 아끼면 화를 부른다.) 선배 중 한 명은 내가 가져온 종합캔디를 돌려주며 "너 가져가"라고 말했다. 가난은 이렇게 사람을 구차하게 만든다. 더럽게도 인기 없던 그 사탕들을 어떻게 처분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마도 나 또한 버렸을 것이다. 맛없는 건 팩트니까. 어째 얘기해놓고 보니 달달한 게 아니라 슬픈 이야기인 것 같다.


가난한 경험은 에피소드가 된다. 그 외에도 가난의 슬픈 장점들은 많다. 가령, 빼앗길 돈조차 없어서 보이스피싱에 걸릴 위험이 없다는 거. 돈도 없고 거기다 엄마까지 없으면 금상첨화이다.

보이스피싱범    : 아들. 핸드폰이 고장나서 그런데 100만 원만 얼른 보내줘~

나                   : 저 10만 원도 없는데요. 

보이스피싱범    : 엄마가 급해서 그래~

나                   : 저 엄마도 없는데... 8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보이스피싱범    : 아...... 죄송합니다...

나                   : 괜찮습니다...

보이스피싱범    : 마음 잘 추스르시고, 그럼 전 바빠서 이만...

나                   : 가지마세요! 죽은 엄마랑 카톡하는 거 같아서 좋으니까! 

보이스피싱범    : ......왜 이래요. 저 사기꾼이에요.

나                   : 가지마! 계속 엄마인척 나한테 카톡해! 안 보내면 경찰에 신고한다?

보이스피싱범    : 아, 잘못 걸렸네.

                                                              엄마 없는 농담, <잘못 걸린 보이스피싱>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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