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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민 Oct 28. 2022

'우리집'이라는 말이 목구멍에 걸렸다

두껍아 두껍아 헌 집...도 없다

나           :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집 다오. 
두꺼비     :  어디서 개수작이야. 구축을 줄테니 신축을 달라고? 아 요즘 인간 날강도네. 
                 그리고 구축도 재개발 예정이면 훨씬 비싼 거 몰라? 그런 구축이면 OK.
                    잠깐만. 그런데 구축은 있긴 하니? 있고 헌 집은 준다는 거야? 월세, 전세는 안 받는...
나           :  제발 그만해.

                                                                         엄마 없는 농담, <요즘 두꺼비> 중에서



집에 대해서라면 할 말이 많다. 속에 맺힌 것이 많다는 것이다. 뉴스에서는 집값이 떨어지고 있다고 난리인데 그래도 기본 몇억씩은 한다. 이럴 땐 괜히 억하심정이 든다. 누구는 주머니에 몇억 원이 있다는 건데, 반면 나는 핸드폰으로 만 걸음 걸을 때마다 주는 몇십 원이나 받으려 한다. 나도 집을 사고 싶다. 평생 집이라고는 '가져본 적'이 없으니까. 심지어 요즘엔 반려견들도 자기만의 집이 있다고 한다. 또 그들은 곱슬머리인 나보다 머릿결도 좋다. 그러니까 '개 같다'는 말은 나한텐 칭찬이 될 수도 있는 것 같다. 그들에겐 집도 있고, 털도 찰랑거리며, 게다가 반려 인간도 있으니까. 


나는 고시원에서도 살아봤고, 원룸에서도 살아봤다. 고시원 이야기는 칙칙하니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한다. 그러므로 고시원에서 탈출하여 원룸으로 갔을 때의 기억을 끄집어내야겠다. 그런데 사실 원룸 이야기도 칙칙하다. 일산에서 월세 500/40짜리 원룸이었는데 다행히 반지하는 아니고 1층이었다. 이 원룸이 칙칙하다고 말한 이유는 처음 갔을 때 방 곳곳에 습기 제거제가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때 눈치챘어야 한다. 이 방은 졸라게 습하고 칙칙할 것이라는 것을. 하지만 어쩌겠는가. 고시원에서 살던 나는 이런 '독립된 공간'이 생긴 것만으로도 이미 눈이 돌아있었다. 오히려 습기 제거제를 '공짜로' 여러 개 놔준 집주인이 친절하다고 생각했었다. 멍청하긴. 그래서 멍청한 나는 이 방과 계약을 했다. 이 습한 방 때문에 훗날 내 안구에 습기가 찰 것도 모른 채.


원룸에 살면서 처음으로 '집주인'이라는 것이 생겼다. 그런데 나는 뭔가 수리할 것이 생겼을 때 이 집주인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가 난감했다. 처음에는 '주인님'이라고 부를까 생각했는데 역시나 뭔가 이상했다. 무슨 SM 플레이도 아니고. 더군다나 주인님은 70대 할머니였다. 또 핸드폰에 저장할 이름도 애매했다. 주인님이라고 저장했다가 회의 도중 전화라도 걸려 온다면 오해를 받을 것이 불 보듯 뻔했다.


"주인님이라니?"

"아, 오해하지 마세요. 그냥 제가 매달 돈을 상납하는 사람입니다."


점점 구렁텅이에 빠질 것 같다. 그래서 결국엔 그냥 집주인이라고 저장했다. 그러면 나는 뭐라고 해야 할까. '집의 주인'의 반대니까 '집의 하인'이라고 불러야되나 싶었다. 그런데 이 집에서 나는 정말로 하인처럼 집을 돌본 것 같기도 하다. 햇빛이 안 들어오며 환기가 잘 안 돼 집 안에 습기가 좀처럼 빠져나가지 못했다. 처음 본 습기 제거제는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나는 하인처럼 집을 돌보기 위해 항상 창문을 열어놨고 인터넷으로 습기 제거제를 대량으로 구매해, 예전 주인님이 그랬던 것처럼 구석구석 그것들을 심어놓았다. 나는 월세를 내고 집을 섬긴 것이었다. 


집주인이라는 명칭 외에 또 하나 걸리는 게 있었다. 그것은 바로 평범하디 평범한 '우리집'이라는 말이었다. 누군가를 자신의 집에 초대할 때 '우리집 놀러 올래?'와 같은 말을 하지 않는가? 그런데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이 원룸을 '우리집'이라고 칭할 수 있는가에 대한 쓸데없으면서 그럴듯한 고민에 빠졌다. 원룸이라 방이 하나뿐인데 '집'이라고 표현해도 맞을까? '우리방에 놀러 올래?'라고 말해야 하는 것 아니야?라는 자격지심 묻은 생각. 당연히 방이 하나여도 엄연한 집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적어도 방이 최소 2개 이상 모여야 '집'이라고 칭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나만의 오묘한 느낌이 있었다. 그래서 고시원이나 원룸에 살던 시절에는 '우리집'이라는 말이 내 목구멍에 걸려 잘 나오지 않았다. 


그 이후로 5년이 지났다. 나는 그곳에서 벗어나 이사를 했다. 열심히 인생을 산 보답인지 지금 나는 강남의 30평대 아파트에 살고 있지 않고, 또... 원룸이다. 아니, 뭔가 잘못됐다. 분명 일에 죽어라 매달렸는데 지금 또 원룸이라니. 물론 그때보다 돈은 조금 더 모으긴 했지만 그래도 뭔가 씁쓸하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나도 성장한 면이 없지않아 있다. 열심히 산 덕택에 계좌에 돈이 (아주) 조금 쌓였다. 시드가 모인 것이다. 이번 집을 구하기 전에 부동산에 방문했다. 


"월세 50에서 60짜리 구하러 왔는데요."


나는 평소 삼송역 근처에서 살고 싶었기에 있는 매물을 거의 다 봤다. 그런데 생각보다 집이 너무나도 좁았다. 원룸 중에서도 겨우 잘 수 있는 그런 공간. 이어서 옥탑방 5층짜리를 보여줬다. 엘리베이터는 당연히 없었고, 집 안에서는 똑바로 설 수가 없었다. 게다가 공인중개사는 월세가 65만원이라며 거저라고 말했다. 5층까지 걸어 올라가야하고 강제로 거북목을 하고 다녀야하는데 65만원이라니. 집값이 너무했다.


"신용등급이 어떻게 되시죠?"


공인중개사는 실의에 빠진 나에게 신용등급을 물었다. 나는 토스를 열어 신용등급을 확인한 뒤 그에게 말했다. 그러자 공인중개사는 계산기를 두드리더니 2억짜리 느닷없이 전세매물을 추천해줬다. 월세 50짜리 구하러 왔는데 2억이라니? 그러자 그는 일단 집을 먼저 보여주겠다고 했다. 전세 2억짜리 집이라, 금리도 높은 마당에 나는 그곳에 살 마음이 없었지만... 집을 보고 나니 마음이 홀렸다. 보면 안 됐는데. 견물생심이라 했던가. 2억짜리 집은 강력했다. 드넓은 거실 하며 누구나 살고 싶은 깔끔한 인테리어 자재, 창밖에는 내가 좋아하는 나무들이 우거졌다. 방도 2개인데다 건물도 깨끗했다. 어떠냐고 공인중개사가 웃으며 물었다. 참으로 전략적이었다. 앞에는 일부러 좁은 매물을 보여주고, 뒤에 본격적으로 누구나 살고 싶은 매물(그렇지만 예산이 초과되는)을 보여준 것이다. 공인중개사는 마치 사탕으로 나를 놀리는 듯했다. 사탄 같았다. 달콤한 유혹에 나는 거의 넘어갈뻔 했지만, 겨우 이내 이성을 되찾았다. 이자가 대체 얼마야, 그리고 요즘 전세사기가 얼마나 많은데... 이성이 넋이 나간 감성을 후둘겨 팼다. 그리고 나는 결국 원룸을 선택했다.


여전히 원룸에 살고 있는 나는 만족스럽다. 방의 크기는 5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지만 그게 뭐가 중요한가. 내가 성장하고 그릇이 커졌는데. 이것은 결코 정신 승리가 아니다. 왜냐하면 요즘에는 '우리집'이라는 말이 목구멍에서 막히지 않으니까. 그냥 서슴없이 나온다. 돈을 차곡차곡 조금씩 모으면서 자격지심이 사라진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원룸에서만 계속 살지는 않을 것이다. 내 다음 목표는 단순하다. 방이 두 개 이상인 집으로 이사를 가는 것. 나도 방문이란 걸 열어보고 싶다. 방에서 방으로 이동하고 싶다는 것이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집 다오'처럼 두꺼비에게 강탈하는 것이 아닌, 내가 정직하게 모은 내 돈으로 말이다. 물론, 두꺼비나 누가 집을 공짜로 준다면 마다하지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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