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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수 변리사 Jan 25. 2019

크록스, 부분 디자인으로 폭넓은 권리를 확보하다

 크록스(crocs) 신발은 전 세계에서 1억 켤레 이상이 팔렸을 정도로 인기가 있습니다. 그 비결은 아마도 발의 편안함에 있지 않을까요. 발을 편안하게 하기 위하여 투박하고 못생겨 보이는 ‘넓고 둥근 앞부분(갑피, upper)’이 디자인의 핵심 부분인 듯합니다. 2009년 미국 소송에서, 다음과 같은 등록디자인과 크록스의 디자인이 비교된 적이 있습니다. 이 소송에서 신발의 갑피(upper)뿐만 아니라 발바닥이 닿는 안창(insole)도 디자인의 구성요소라고 판시하였습니다.


미국 등록디자인 US D529,263 / 크록스 신발(출처: 크록스 홈페이지)


 앞에서 보여주는 미국 등록디자인의 안창 모양은 크록스 신발의 안창 모양과 다릅니다. 그렇다면 두 디자인은 비슷하지 않다고 해야 할까요? 판사는 객관적인 입장에서 비슷하지 않다고 판단할 수도 있겠지만, 크록스의 디자이너는 안창의 모양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거나 디자인 권리로서 주장하고 싶지 않을 수 있습니다. 즉 크록스 신발의 디자이너는 넓고 둥근 앞부분이 중요한 특징이고 발 마사지 효과가 있는 안창의 모양은 디자인적 요소가 아니기 때문에, 두 개의 신발 디자인이 너무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디자이너 입장에서 창작한 부분은 여러 개일 수 있고 그중 가장 중요한 부분과 부수적인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제품의 디자인 중 창작하지 않은 부분도 있습니다.


 항상 제품 디자인 전체만을 디자인권으로 주장할 수밖에 없는지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디자이너의 주관적인 생각대로 창작한 제품의 일부분을 특정하여 디자인권을 확보할 수는 없을까요? 이런 생각을 실현할 수 있는 제도가 ‘부분 디자인’이라는 개념입니다. 


부분 디자인 제도를 이용하면, 제품 전체가 아닌 제품의 일부분에 대한 디자인을 특정하여 디자인권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라비또의 사례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다음과 같은 머그컵을 곽미나 대표가 디자인했습니다. 머그컵은 크게 컵의 본체, 손잡이, 토끼 모양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컵의 본체와 손잡이는 일반적인 형태이고, 토끼 모양만 창작된 디자인입니다. 이런 경우에 다음과 같이 창작한 부분만을 실선으로 특정하고 나머지 부분은 점선으로 표현합니다. 또는 특정 컬러로 디자인권으로 주장하지 않는 부분을 특정할 수 있습니다.


라비또 머그컵(출처: 라비또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 / 등록디자인 제30-0767994호


 컵의 본체와 손잡이에 토끼 모양이 붙어 있어서 물리적으로 분리될 수 없기 때문에, 디자인 등록을 신청할 때 디자인의 대상이 되는 물품은 컵의 토끼 모양이 아니라 ‘컵’으로 해야 합니다. 디자인권에서 물품이란 독립적으로 거래될 수 있는 대상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물품과 관련하여 약간 헷갈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구두의 뒷굽은 물품으로 지정할 수 있을까요? 구두의 수선을 위하여 구두의 뒷굽도 독립적으로 거래되기 때문에, 구두 전체가 아닌 구두의 뒷굽을 물품으로 지정할 수 있습니다.


 부분 디자인 제도가 없다면, 컵 전체 형태를 디자인으로 등록해야 합니다. 이 경우, 컵 본체와 손잡이 형태가 다르고, 토끼 모양이 비슷한 경우 다툼이 생길 수 있습니다. 곽미나 대표는 토끼 모양이 비슷하기 때문에 디자인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할 것이고, 상대방은 컵의 전체적인 형태가 다르기 때문에 디자인권을 침해하지 않았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법원에서 판단하게 된다면, 객관적 자료들에 의하여 디자인의 구성요소들을 비교하여 공통점과 차이점을 확정하게 되고, 그 결과 디자이너의 생각과 다른 결론이 나올 수 있습니다.


 부분 디자인 제도를 이용하여, 컵의 본체와 손잡이 형태를 제외하고 토끼 모양만 특정하여 권리화하면, 상대방이 토끼 모양을 모방하고 컵의 본체와 손잡이 형태를 변형하더라도 디자인권을 침해한 것으로 봅니다. 부분 디자인 제도가 존재하는 이유는 디자이너의 주관적 의사를 관철시키고, 디자인의 주요 부분을 모방하면서 약간의 변형을 통해 디자인권을 피해 가는 일을 방지하기 위한 것입니다.


 결국 부분 디자인 제도를 이용하면, 넓은 권리범위의 디자인권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이는 디자인의 구성요소를 최소화하여 권리로서 특정함에 따른 효과입니다. 디자인의 구성요소를 적게 할수록 디자인권의 권리범위는 넓어집니다.


디자인 등록을 받을 수 있다는 전제에서, 부분 디자인 제도를 이용하여 디자인 구성요소를 적게 할수록 디자인권은 강력해집니다


 다시 크록스의 디자인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2009년 미국 소송은 크록스에게 큰 교훈을 준 것인지도 모릅니다. 부분 디자인 제도를 활용하여, 소비자에게 잘 보이지도 않고 중요하지 않은 안창과 밑창은 디자인권에서 제외시켜야겠지요. 현재 크록스는 부분 디자인 제도를 이용하여 수십 개의 디자인권을 한국에 확보해두고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등록디자인을 예시로 들면, 디자인의 대상이 되는 물품은 ‘신발’로 지정하면서, 파란색으로 표시한 부분은 디자인 등록대상에서 제외된다고 기재하고 있습니다. 즉 안창과 밑창의 형태는 디자인 요소에서 제외하고 디자인권을 확보하고 있다. 크록스가 이렇게 디자인권을 확보한 상태에서, 다른 회사에서 넓고 둥근 앞부분을 모방하면서 안창 또는 밑창의 모양을 변형하여 제조 또는 판매하더라도 크록스의 디자인권을 침해하게 됩니다.


등록디자인 제30-078414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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