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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열 Mar 03. 2023

시선의 차이

생각

"얘들아 내일 시험에 이거 나와. 졸지 마..."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어렵다.


내가 이해한 것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는, 이해시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렵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 더더욱 그렇게 느낀다. 처음 대학 강의 기회가 생겼을 때, 의욕이 넘쳐나 ‘재미있게 수업을 진행해서 학생들이 수업을 오고 싶도록 만들어야지!’라는,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를 나 스스로에게 했었다. 애들은 그런 거 안 좋아해 그냥 학점이나 잘 줘. 지금은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렸지만, 사실 상담사가 되기로 결심하기 전 대학생 때만 하더라도 교육 대학으로 진학해서 고등학교 선생님이 되는 것이 꿈이었었다. (캐나다는 학부 과정 후에 교육대학을 가야 선생 자격을 취득할 수 있다.)


그리고 결과는 미지근했다. 망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대한 만큼 만족스럽지도 않았다. 매번 수업을 준비하는 것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과는 별개로 수업 참여도 자체가 높지 않았다. (COVID19 이후 온라인 강의만 듣던 학생들이 캠퍼스로 등교를 하는 게 생각보다 큰 변화였던 것 같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수업을 준비해 오는 것 과는 별개로, 나올 학생들은 뭘 해도 나오고, 안 나올 학생들은 뭘 해도 가끔 얼굴만 내비쳤다. 평소에 성실한 학생들은 무슨 과제든 알아서 잘해왔고, 그 반대로 과제를 제출조차 하지 않는 학생들도 있었다. 하지만 자신감이 부족했던 탓일까, 어쩐지 과제를 잘해오는 학생은 원래 특출 나서 잘한 것 같고, 못 해오는 학생들 과제를 보고 있으면 내가 못 가르쳐서 못 한 것 같았다. 학생들의 성적과 수업 태도가 내가 얼마나 실력 있는 강사인지 평가하는 잣대라고 느껴졌고, 과제를 제출하지 않거나 엉망으로 제출하는 학생이 있으면 오히려 내가 더 그들의 성적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부모님께 늘 말씀드리는 "자녀가 해야 할 걱정을 대신해 주지 마세요"를 내가 하고 있었다.)


물론 나도 돌이켜보면 대학교 1학년때는 세상 무서운지 몰랐고, 무슨 배짱인지 기분 내킬 때만 수업을 갔다. 비가 오면 수업 안 가, 눈이 오면 수업 안 가, 금요일이니까 수업 안 가, 스스로에게 쉴 시간이 필요하다며 (뭘 했다고 쉬는 거지?) 자체방학 모드에도 들어갔었다. 그렇게 알차게 하는 일 없이 쉰 나의 대학 1학년은 학점은 참담했고. 내 인생의 흑역사 중 하나로 장식되었다.


학기를 마치고 학생들의 강의 평가서를 이메일로 받았을 때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학생들의 답변 또한 미지근했다. (평가서를 작성조차 하지 않은 학생들이 절반쯤 되었다.) 제일 재미있는 수업도 아니었고, 의욕을 주는 강의도 아니었다. 그냥 그들에겐 수많은 대학 수업 중 하나였다.


그리고 평가서를 읽어가던 중 한 문장이 눈에 띄었다.


"이 강사의 과제는 지나치게 어렵고 수업도 너무 난해하다.  4년제 대학을 다니는 친구에게 이야기해 보아도 과제가 너무 어렵다고 공감했다."


처음 이 글을 읽고는 어처구니가 없으면서도 (수업시간에 어떻게 답을 쓰라는 것까지 알려줬잖아!!!) 또 한편으론 조바심이 느껴졌다. 혹시 정말로 내가 가르치는 방식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그래서 쉬운 과제도 어렵다고 느낀 것은 아니었을까.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다 보니 학생들이 수업을 따라가는데 어려워했던 것은 아닐까? 내가 조금 더 예제를 많이 가져왔어야 했을까? 내가 교제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참고로 내가 가르치는 대학은 2년 제이다.)


내가 형편없는 강사인 것은 아닐까?



처음 강의를 맡았을 때, 학과장께서 ‘강의하시는 분들 대부분이 상담사이신데, 한 가지만 기억하세요. 학생들은 내담자가 아닙니다’라는 충고를 해주셨었다. 그래, 대학까지 온 학생들이면 학업은 스스로 챙길 줄 알아야지. 내 의지로 학생들을 바꿀 수는 없는 거니까. (내가 항상 부모님들께 '본인이 책임을 다 지시면 자녀들이 질 책임이 없다'라고 이야기했던 것처럼 말이다.) 사실 평가서를 찬찬히 읽어보면 긍정적인 평가도 많았다. 다만 내가 관심을 두고 신경을 쓰고 있었던 것은 부정적인 평가들이었다. 흔히 말하는 '칭찬은 당연한 것, 비판은 내가 못나서' 인지오류.


당신이 10명의 사람을 만난다면, 한 사람은 당신을 싫어할 것이고, 두 사람은 당신을 매우 좋아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7명은 당신에게 관심을 두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은 누구와의 관계에 집중하고 싶습니까?


언제 세미나 강의에서 들은 이야기다. 우리의 시선을 어디에 둘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어쩌면 난 내가 부족했던 점들에만 시선을 두고, 그 위주로 내러티브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렇다고 무작정 '괜찮아!'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는 의미는 아니다. 내가 잘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방법은 누군가 정의를 물었을 때 한 문장으로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난 아직 그 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다. 다만, 놓치고 있었던 강점관점 (Strength-based)의 내 이야기에도 사부작 귀를 기울여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런 연습이, 무작정 ‘형편없는 강사‘라는 비난 대신 '아직은 배울 것이 많은 강사’라고 나 스스로에게 단 꼬리표를 고쳐 적을 수 있지 않을까.




꼰대가 되어간다. 요즘 학생들 왤케 수업 태도 안 좋니. 라떼는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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