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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서 Oct 24. 2022

좋아하는 일에 의미를 찾는 것 - 산책

나는 걸음마를 빨리 배웠다. 아직 제대로 단어 하나 말하지도 못하던 어린아이가 어디를 그리도 가고 싶었는지. 오동통한 두 다리로, 한 뼘도 되지 않는 두 발로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내디뎠다고 한다. 내가 걷는 것을 좋아하게 된 게 그때부터였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어떠한 고민이 있을 때, 날이 좋을 때, 울고 싶어질 때 그냥 정처 없이 걷는다. 어느 날은 친구에게 나의 ‘정처 없는 걸음’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내게 ‘산책’을 좋아하느냐고 물어왔다. 한 번도 산책을 해봤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데, 왜인지 바로 “응.”이라는 대답이 나왔다. 기억나지 않는 순간부터 나는 이미 산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2020년에는 이유 없는 작은 외로움이 늘 함께했다. 뭐가 그리 힘들었는지 무작정 학교를 쉬겠다 통보하고 일 년 내 집에만 있었다. 학교를 쉬는 게 정답은 아니었다. 끈질긴 삶은 포기를 모르고 계속해서 나를 따라다녔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은 두려웠고,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동네 산책길을 걷는 일뿐이었다. 처음 며칠은 걸으면서도 아무 감정을 느낄 수도 없었다가,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새로운 것들이 보였다. 어떤 날에는 시멘트 위로 피어난 들꽃을 보았고, 어떤 날에는 상수리나무에서 떨어진 도토리, 호숫가의 반짝이는 별이 그것이었다. 혼자서는 무엇도 찾을 수 없던 내가 새로운 것을 발견할 준비가 되었다는 것. 그것은 정말 큰 위로였다. 그때부터 산책은 ‘좋아하는 일 그 이상의 어떤 무언가’가 되었다.

 

 산책을 내 일상의 한 부분으로 새기게 된 지 3년 차인 지금도 길을 나서기 전에는 괜스레 마음이 들뜬다. 숲 속 산책길에서는 뜻밖의 만남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얼룩무늬 고양이도 만나고, 나무 위의 새들도 만나고, 꿈틀꿈틀 어딘가로 향하고 있는 지렁이도 만난다. 숲 속에선 모든 존재가 동등하다. 누구의 소유도 아닌 숲에서 우리는 그렇게 잠시 친구가 된다. 나는 나도 모르는 존재가 되어 정처 없이 돌아다니다 이내 일상으로 회귀한다. 산책의 특별함은 일상의 반복되는 경험에서 벗어나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내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원할 때 언제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하는 곳에서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때야 비로소 숱한 자유로움을 느낀다. 숲 속에서 만나는 일회성 관계가, 그 자유로움이 내겐 참 소중하다.

 

 산책의 특별함이 모여 이제는 평범한 일상이 되었지만, 산책을 왜 하냐 물으면 나는 아직도 이유를 댈 수 없다. 고양이가 생선을 좋아하는 것처럼, 하품이 전염되는 것처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있다. 좋아하는 소설가가 달리기를 “내 인생에서 아무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라고 말하는 것을 본 후, 좋아하는 일에 의미를 찾으려는 욕심을 내려놓았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자신이 하는 일에 구태여 의미를 두려고 하지 말고, 그저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을 지키는 일에 몰두하였으면 좋겠다. 나는 오늘도 아무런 물음 없이 길을 나선다. 어디로 가느냐 물으신다면 ‘그냥 발길이 닿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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