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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설자 May 26. 2024

5월을 걸으며

나무에게 배운다

       

 세상이 온통 연둣빛이다.

 울긋불긋 물들 때, 빈 가지 사이로 시린 하늘이 쏟아져 들어올 때, 그 어느 때건 예쁘지 않은 때가 없지만, 돋아난 이파리가 여리여리 풍성해지는 5월의 나무들이 가장 예쁘다. 겨울을 이겨내고 겨우내 삶을 멈추었던 검은 줄기들은 어린잎들을 내보내며 칙칙했던 마른 세상을 싱그럽게 물들인다.


 주말에 내린 비로 길바닥이 꽃잎으로 깔려 있다. 아직도 물기가 머금은 채 꽃눈이 살아 있어 밟지 못하고 깡충 걷기를 한다. 야구경기를 응원하는 사람들의 함성처럼 한꺼번에 피었던 이팝나무, 쪽동백도 구름처럼 몽실몽실 하얀 꽃을 달고, 만첩빈도리는 하얗게 눈부시다. 벌써 개망초가 지천에 피어 한들거린다.

 

 나무들 아래 자라는 작은 풀들, 포슬한 검은흙이 품은 지렁이와 작은 개미들, 포르륵 포르륵 날아다니는 참새들, 그 사이로 빛나는 햇살. 싱그런 마음들이 나무에 걸려 있다. 나무 아래를 걸으면 푸른 물이 내 어깨에 내려앉는다. 내 안의 구겨진 마음들이 반듯하게 펴지지 않을 수 없다. 그게 다 나무의 덕이다.


 5월. 어디를 가든 세상이 빛난다.

나무들만 저들끼리 푸르렀던 3년 동안, 나무들의 마음을 더듬으며 기다림을 배웠다. 그렇게 갇혀 살던 때, 오월은 우리 옆에 있었고 그토록 찬란한 줄 모르고 멀리로만 시선을 날리던 날들이었다.

 



 

 누가 눈길을 보내주지 않아도 묵묵히 꽃을 피우고 익어가고 말없이 잎을 떨구고 생을 마감한다. 그러고도 자신이 모든 것을 누군가를 위해 쓴다. 고목에는 버섯을 피워 내고, 줄기를 뻗어 감아 올라가는 넝쿨식물에게 내어주고, 땔감으로 혹은 장작으로 온몸을 바쳐 누군가의 차가운 마음을 데워준다. 부서진 둥치는 굼벵이 같은 작은 생물들을 위한 안식처를 마련해 준다. 기다리던 봄을 피워 올려 젊음을 멈춰 세우고 그늘을 만들어 덕을 베푼다.


 그러니 나무는 해마다 태어난다.

어떤 나무는 나이 먹으며 더 예뻐진다. 벚나무가 그러하다. 오래될수록 검어진 나무줄기에 새로 핀 벚꽃은 더 희고 풍성하다. 작년의 꽃보다 더 눈부시게 피워낸다. 나의 인생도 시간이 갈수록 풍성해지도록 마음을 닦고 부지런히 내 안의 잎을 밀어 올리리라 마음을 다독인다. 나무에게서 삶을 배우리라.

    


여전히 매년 오월이면 있는 힘껏

무성해진 숲은 끊임없이 살랑거린다

작년은 죽었다고 나무들은 말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하라고. 새롭게, 새롭게.               


                                  - 필립 라킨 <나무들> 중에서  


   

작년은 죽었으니 올해는 더 새롭게 살라고 말한다.

지나간 시간을 아쉬워하지 말라고 말한다.

지난 상처와 아픔은 아무도 모르게 나이테에만 새기라고 나무가 먼저 시범을 보인다.

나무가 둥치를 내어 줄 때 비로소 나이테를 읽을 수 있듯, 생을 마감했을 때 비로소 읽힐 인생의 나이테.

나의 나이테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새겨져 있고 또 새겨질까.


나무들처럼 날마다 해마다 새로 태어날 일이다.

오월, 자연은 우리 영혼을 맑게 씻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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