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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도 Jul 08. 2024

"서울만 오면 목이 아파요" 굳이 이 자리에서?

내가 했던 말을 돌아보는 시간

아이의 성장과 함께 체험의 내용도 진화한다.


클레이와 레고로 촉감놀이를 즐기고, 아빠 놀이터라는 이름 아래 몸놀이를 격하게 즐기던 나와 아이의 모습이 기억 속에 생생한데

그 사이에 아이는 자랐다.


이제는 책과 강연, 그리고 그것과 연계된 외부활동이 있는 그 이름도 거창한 '인문학' 강의에 함께 하게 됐다.


자연을 배경으로 한 그림책을 쓴 작가와

보고, 듣고, 만지고, 즐기는 인문학 강연이라는 소리에 나와 아이의 기대도 제법 컸다.


탐방 전에 진행되는 작가 강연에 앞서

작가가 그리고, 썼다는 그림책을 미리 읽고 갔다.


유치원부터 초등학생까지의 아이들이 주를 이루는 만큼 딸과 자연을 여행하면서 그린 그림과 이야기를 작가가 들려고 아이들 각자의 작품을 그리고 공유하는 시간을 기대했는데...


그는 두 시간의 강연 시간을 거의 꽉 채워서

책을 한 페이지씩 넘기면서 자기의 이야기를 하기 바빴다.


아이들은 몸을 비비 꼬기 시작했고, 테이블 위에 놓인 포스트잇이나 종이에 그림을 그리면서 시간을 견뎠다.


어른들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앞에 놓인 그림책을 보고 또 보거나 중간중간 목말라하거나 화장실에 가겠다는 아이들을 조심스럽게 데리고 나갔다 들어왔다.


"서울만 가면 목이 아파요.

살 때는 느끼지 못했는데, 내려와서 지내다 보니까 서울에 가면 목이 아프고

몸이 아파요."


"저는 여기서도 다 일해요. 출판사 분들이 오히려 제가 있는 곳으로 내려와서 놀다가 가시기도 하고요.

예전 같았으면 불편했겠지만 지금은 카카오톡으로 문서 주고받고, 안 오는 것 없이 택배 다 오고 요즘 세상에는 내려와서 사는 것이 더 좋아요."


자연과 본인 고향을 예찬하던 작가는

강연 중간 이런 말을 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농촌유학으로 자녀와 배우자는 농촌에 내려와 있고본인은 서울에서 주말마다 내려오는 이들이 꽤 있었다.


본인 고향을 입이 마르게 칭찬하면서 고향이 서울이거나 거기에 정 붙이고 사는 이들에게
서울에 가면 온몸이 아프다고 하면 이건 뭐... 칭찬이 반감으로 돌아올 뿐이다.


그런 말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런데 굳이 애들 대상 강연에서 해야 했나 싶다.


아는지 모르는지 분위기는 싸해졌지만

그는 굳건하게 본인의 발언을 이어갔다.


"대학도 꼭 좋은 곳 갈 필요 없어요.

하버드대 강의를 집에서 들을 수 있는 시대예요."


이런 말도 이어졌다.

 그는 작가 소개에 본인의 학교와 전공을 정확하게 적었고 강연 중간중간 대학에서 만난 인연과 선후배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했다.


세상에 셀 수 없이 많은 회사원들이 재택으로도 업무가 가능한 것을 몰라서 안 하는 것이 아니다.


하버드대 수업도 인터넷으로 집에서 들을 수 있는 시대인 줄 몰라서 입시에 열을 올리는 것이 아니다.


강연을 들으면서 그간 내가 말과 글로 불필요한 말을 해서 상대를 기분 나쁘게 한 적은 없는지


분위기가 싸해졌는데도 그냥 내 이야기를 '에라 모르겠다'하면서 끝까지 이어간 적은 없는지 문득 돌아본다.


신조어의 의미를 아는지 묻는 질문에서 '갑분싸'를 '갑자기 분뇨를 싸지른다'라고 답한 황정민 배우가 떠오른다.


그래. 갑자기 싸지른 분뇨를 맞은 것 같은 감정을 느끼게 하는 말은 조심해 보자.



# 강연 #칭찬 #서울 #내로남불 #자연 #그림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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