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똥이 사라졌다

21.10.19(화)

by 어깨아빠

아내는 아침 일찍 서윤이를 데리고 (물론 나머지 둘도 함께) 병원에 갔다. 서윤이의 말이나 행동을 보면 큰 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어쨌든 설사가 멈추지 않고 있으니 진료는 필요해 보였다. 병원 대기 공간에 나란히 앉은 세 녀석의 사진을 아내가 보내줬다. 머리도 없는데 마스크까지 씌워 놓으니 그 누가 뭐래도 아들이었다. 우리 서윤이.


아내가 병원에 있다며 사진을 보냈을 때도 꽤 이른 시간이었는데, 병원에 가기 전에 당근 거래도 하고 왔다고 했다. 당장 시윤이가 신을 운동화가 없어서 하나 사야 했는데 새 신발을 사자니 너무 아까웠다. 딱 이번 한 계절 신고 끝날 만큼 쑥쑥 크고 있으니까. 자연스레 당근으로 눈을 돌렸지만 마음에 드는 건 없었다. 아내는 나보다 관대한 마음으로 여러 후보군을 나에게 제시했지만 오디션 프로그램의 까탈스러운 심사위원처럼 다 쳐냈다. 그러다 그나마 나아 보이는 걸 하나 통과시켰다. 실제로 보고 정 마음에 안 들면 버려도 아깝지 않을 (아깝지 않은 돈은 없지만) 금액이었으니까. 실제로 본 아내가 의외로 괜찮다며 한 번 빨기만 하면 될 것 같다고 했다.


“괜찮단 말이야? 믿기지 않네?”


난 믿지 않았지만.


다행히 서윤이의 증상은 장염은 아니라고 했다(정확히는 장염일 가능성은 매우 낮다). 아내와 나의 예상처럼 찬 곳에서 급히 밥을 먹다 보니 배탈이 난 것 같다고 하셨다. 뱃속 소리를 들어 보니 장 소리가 매우 빠르다고 하셨다. 아마 설사를 더 할 거라고 하셨고.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요즘 세균성(전염성) 장염이 워낙 유행이니 서윤이도 하루 정도는 다른 사람을 만나지 않는 게 좋다는 말씀도 하셨다.


아내와 아이들은 원래 처치홈스쿨 모임에 참여하려고 했다. 서윤이가 하루 정도는 집에 있는 게 좋다는 진단에 오늘은 불참하기로 했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크게 낙심했다. 아내의 말에 의하면 소윤이는 진심으로 속상했고 시윤이는 누나를 따라 속상함이 큰 척했고(속상하긴 했지만 그만큼은 아니었는데 누나가 속상해하니 자기도 그 정도인 척). 충분히 이해가 되는 속상함이었다. 아내는 소윤이와 시윤이의 마음을 위로해 줄 방법을 고민해야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잠시 후 아내와 다시 통화를 했다.


“어, 여보. 어디야?”

“집이지”

“애들은 뭐해? 소윤이랑 시윤이는 좀 괜찮아졌어?”

“아, J 언니가 데리고 갔어”

“아, 진짜? 소윤이랑 시윤이가 그러겠다고 했어?”

“어, 완전. 내가 언니랑 통화하는 걸 듣더니”

“아, 그랬구나 잘 됐네. 서윤이는 괜찮고?”

“어 괜찮은 것 같아. 기분도 좋아”


소윤이와 시윤이를 보내고 서윤이와 둘이 지내던 아내는 아주 사소하지만 생소한 일을 겪었다고 했다. 배가 아파서 화장실을 가야 하는데 서윤이를 혼자 거실에 두고 가기가 어려웠다는 거다. 평소에는, 특히 요즘에는 우리 집의 믿을 만한 인력인 소윤이가 있기 때문에 이런 일로 고민할 필요가 없다. 가끔 말을 안 듣기는 하지만 그래도 보조의 역할을 곧잘 해내는 시윤이도 있고. 그 둘이 없으니 서윤이를 두고 화장실에 가야 하는, 아내에게는 매우 어색한 상황이 벌어진 거다.


아내는 언니와 오빠의 자리를 대신할 치치(소윤이 때부터 우리와 함께 산 애착 인형)를 안겨 주며 화장실에 다녀왔다고 했다. 서윤이는 바닥에 누워서 치치를 이리저리 안고 뒹굴면서 잘 놀았다고 했다. 바나나도 우걱우걱 잘 베어 먹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저녁쯤에 아내가 다시 데리고 왔다. 잘 하고 왔는지 모르겠다. 뭐 잘 하고 왔겠지. 엄마와 아빠가 아닌 이모이자 선생님과 함께 있을 때는 어떤 소윤이, 시윤이가 될지 참 궁금하긴 하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주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온 듯, 기분이 좋아 보였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뭘 먹었는지, 뭘 하면서 지냈는지 물어보곤 한다. 이런 질문도 자주 한다.


“오늘도 행복하게 보냈어?”


시윤이가 아주 가끔, 서윤이가 엄마를 독차지하려고 해서 행복하지 않았다고 대답하는 것 말고는 대부분 행복하게 보냈다고 답한다. 내 소망은 자녀들이 언제나 행복한 게 아니다. 물론 그러면 좋겠지만, 살아 보니 행복하지 않다고 느낄 만한 순간도 꽤 많다. 내 진짜 소망은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가 행복하지 않다고 느낄 때 아내와 나에게 와서 솔직하게 말하는 거다. 그래서 자꾸 물어본다.


서윤이는 아파 보이지는 않았지만 많이 졸려 보였다. 저녁도 몇 숟가락 먹다 말았다. 더 먹을 생각이 없어 보이길래 일찌감치 바닥에 내려놨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퀴퀴한 냄새가 풍겼다. 당연히 또 설사를 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내의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오, 서윤이 똥을 좀 제대로 쌌네”

“왜? 설사 안 했어?”

“어. 아까까지만 해도 완전히 물똥이었는데 지금은 좀 나아졌네”


나도 가서 확인을 했다. 확실히 물똥은 아니었고 질퍽…아니, 굳이 설명은 안 해도 되겠다. 서윤이도 왠지 한결 편안해진 것처럼 보였다.


나는 목장 모임이 있었다. 애들을 재우고 나온 아내는 급히 옷을 챙겨 입더니 나에게 카톡을 보냈다.


“여보 나 스타벅스 다녀 올게용. 오늘 생일 쿠폰 마감인데 흑흑”


마감 시간이 얼마 안 남은 시간이었지만 아내는 잠깐이라도 앉았다가 올 거라며 나갔다. 아내는 생각보다 늦게 돌아왔다. 스타벅스에 갔다 와서 주차장에 차를 대고 그대로 차에 앉아 볼 일을 보고 올라오겠다고 했다. 아내는 은근히 바쁘다. 집에 들어올 때도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들어오고 나서도 한참 동안, 자정이 넘도록 통화가 이어졌다. 모두 수다는 아니었고 처치홈스쿨과 관련된 중요한 통화였다. 아내도 참 열심히, 성실히 산다.


아내는 통화를 마치고 내가 알아야 할 중요한 이야기 몇 가지를 내게 전해 줬다. 그때가 이미 자정이 넘은 시간이라, 대화는 짧게 마치고 자러 들어갔다. 오늘도 변함없이 자고 있는 삼 남매를 보며 서로 감탄(아내나 나나 밖에는 티를 안 내고, 서로에게만 난리를 피운다. 우리 속에서 어떻게 이런 자녀들이 나왔는지)을 주고받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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