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4(금)
요즘은 평소에도 연락을 많이 하지는 못하지만, 오늘은 유독 서로 연락이 뜸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낮에 형님(아내 오빠)네 집에 보냈다고 했다. 형님 부부가 모두 집에 있는 날이라 꽤 이른 오후에 애들을 데려다 주고 아내는 서윤이와 함께 집에 돌아오는 길이라고 했다. 애 셋에서 둘이 되었음은 물론이고 서윤이는 날에 따라서는 먹고 자기만 반복할 때도 있으니, 아내의 하루가 꽤 편할 거라고 생각했다.
퇴근하고 나서는 파주(처가)에 가서 하루 자고 오기로 되어 있었다. 주일에는 집에 손님이 오기로 했고. 그말인즉, 누군가를 초대하기에는 기준에 못 미치는 집을 ‘오늘’ 치워야 한다는 뜻이었다. 내일도 시간이 없을 테니. 아내는 하루 종일 청소를 했다고 했다. 어느새 함부로 손대기 어려운 상태가 되었던 작은 방부터, 거기는 원래 그렇게 쓰기 위해 만들어 진 것 같았던 베란다까지. 퇴근해 보니 입주 초 상태로 복구되어 있었다.
아내는 여느 날과 다르지 않게, 지친 표정이었다.
여기서 잠깐. 맨날 아내가 지친 표정이라고만 쓰면 마치 행복과 웃음이 없는 얼굴이었다고 오해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건 아니고, 행복하지만 남은 힘이 없는 얼굴이랄까. 42.195km 의 달리기를 1등으로 마친 선수의 모습이라고 하면 되려나.
아무튼 오늘도 서윤이는 아내에게 업혀 있었다. 날 보더니 방긋 방긋 웃었다. 진짜 이 웃음 한 방이면 모든 기억이 초기화 된다.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런 게 싹 잊혀지면서 ‘저 웃음을 어떻게든 한 번 더 보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괴상한 몸짓과 소리를 보여주는 걸 서슴지 않는다. 일단 아내에게서 받아 들었다. 하루 내내 그리웠던 서윤이의 살 냄새, 숨 냄새를 한껏 들이키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여전히 형님 집에 있었다. 파주로 가면서 형님 집에 들렀다. 서윤이는 잘 앉아 있었는데 형님 집에 도착해서 애들이 나오기를 기다릴 때, 엄청 울기 시작했다. 꽤 서럽게 울길래 계속 울면 어떡하나 걱정했다. 달려오는 모습만 봐도 얼마나 재밌고 기분이 좋았는지 느껴지는 소윤이와 시윤이가 등장했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는 파주에 가는 걸 말하지 않았다. 저번처럼 잠깐 바람이나 쐴까 한다고만 얘기했다. 소윤이가 평소에 입버릇처럼 얘기했다.
“엄마. 나중에 언제 파주 가게 되면 저한테 미리 말하지 마여. 알았져? 깜짝 놀래켜 주세여”
막 울던 서윤이는 소윤이와 시윤이가 타자 (서윤이는 거꾸로 타니까 소윤이와 시윤이의 얼굴을 마주 본다) 울음을 뚝 그쳤다. 나도 여전히 믿기지 않고 신기하지만, 154일 밖에 안 된 이 녀석도, 이제 사람 얼굴을 가릴 줄 안다. 셋째가 키우기 쉬운 또 하나의 이유는, 꼭 엄마, 아빠가 아니어도 언니, 오빠여도 울음을 그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길눈이 밝은 소윤이는 어느 정도 가면 파주에 가는 걸 알아차리지 않을까 싶었는데, 아파트 입구에 도착해서야 알아차렸다.
“엄마. 파주 할머니 집에 가는 거였어여?”
시윤이는 자고 있어서 몰랐다. 퇴근해서 형님네까지 들렀으니 시간이 꽤 늦었지만, 모두 저녁을 먹기 전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김밥과 튀김, 어른들은 물회를 먹었다. 서윤이는 모유. 서윤이는 도착하자마자 수유하고 잠들었다. 오늘도 낯가림을 했다. 처음에는 괜찮나 싶더니 얼마 안 돼서 막 울었다. 아내나 내가 안아주면 그치고.
밥 다 먹고 나니 더 늦은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에 커피를 사러 나갔다. 아내랑 나랑 차 없이 걸어서 갔다.
“여보. 우리 둘이 언제 이렇게 걸었지?”
그러게.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마도 아내가 서윤이를 배에 품었을 때, 신림동이나 파주에 가서 애들 맡겨 놓고 나갔겠지.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도 않을만큼 까마득한 옛 일이었다. 비록 차림은 추레하기 그지 없었지만, 기분은 좋았다. 애가 셋이 된 후 가장 안 좋은 점은 애들을 맡기기가 한결 부담스러워졌다는 거다. 둘일 때도 그렇긴 했지만 셋은 차원이 다른 느낌이다.
총 20분도 되지 않는 아주 짧은 외출이었지만, 애들 손 아닌 아내 손 잡고 걸으니 좋았다.
아내는 오늘 힘들었다고 했다. 정신과 육체 모두 다. 내가 예상하고 느낀 것하고는 달라서 조금 놀랐다. 시윤이와 소윤이 모두 원인 제공자였다. 청소를 열심히 (담백하게 써서 그렇지 정말 엄청난 수고와 노력이 느껴질 정도의 환골탈태였다) 한데는 그런 이유도 있었다. 아내는 마음이 복잡하거나 짜증이 날 때, 청소에 몰두하며 스트레스를 풀곤 한다. 아내가 청소업체 직원처럼 ‘빡세게’ 청소를 할 때는 애들 때문에 너무 속이 상했거나, 나랑 싸웠거나 둘 중 하나일 때가 많다. (아, 그러고 보니 요즘 너무 안 싸워서 작은 방이 그렇…)
파주에 갈 계획이 없었을 때는 집에서 영화를 보려고 했다. 넷플릭스 구독 해지를 앞둔 마지막 주말이었다. 파주에 갔으니 이미 기회는 사라졌지만, 그게 아니었어도 아내나 나나 엄청 피곤했다. 고작 11시에 애들 재우러 같이 들어갔는데 아내는 거의 바로 잠들었고, 나도 이마에 휴대폰 낙하 세 번 정도 당하고 나서 자기로 결심했다.
내일 늦잠 자야지.